[일본의 한국 인식] 야나기 무네요시와 조선의 미

등록일 2003.06.15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조선에 대한 관심
2.공분과 사모
3.조선행과 조선인과의 교류
4.조선 미술관의 설립
5.비애의 미

본문내용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일본 민예 운동의 원조(元祖)로 알려져 있는데, 그 근원에 조선 민예의 아름다움과의 만남이 있었다. 그것은 '탈아입구(脫亞入歐)' 신앙이 지배적이던 근대 일본에서 대단히 희귀한 일이었다.
야나기가 조선의 민예에 관한 글들을 쓰기 시작한 시기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다. 1910년에 병합된 이후 조선에서는 일본인 조선 총독이 사법, 입법, 행정 3권을 독점하고 일본인 헌병이 그 말단을 떠받치는 이른바 '무단 정치', '헌병 정치'가 행해지고 있었다. 조선인은 망국인이며 피지배 민족이었다. 1919년 3·1 독립 운동을 계기로 일본은 조선에 '문화 정치'를 행한다고 선전했지만 그것은 극히 표면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1931년에 '만주 사변'이 발발하자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갖가지 정책이 취해지게 되었다. 징병, 강제 연행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계 속에서 일본인은 조선인, 더 나아가서는 조선의 모든 것에 대한 심한 멸시관을 갖고 있었다. 다음에 인용하는 것은 야나기보다 3살 많은 조선통(朝鮮通) 호소이 하지메(細井肇)의 <조선 문화 사론(朝鮮文化史論)>(1910)의 한 구절인데, 이러한 조선 멸시야말로 당시 많은 일본인들의 사고 방식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