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사] 녹과전

등록일 2003.06.15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성립배경

2. 녹과전의 설치
ⅰ. 성격, 특징
ⅱ. 분급 설정지 - 경기 8현
ⅲ. 분급 대상자 - 양반관리
ⅳ. 녹과전의 영향 - 군?한인전
ⅴ. 과전법으로 ...

3. 녹과전의 의미

본문내용

1. 성립배경

본디 고려관리의 관료지급은 田柴科의 토지분급과 祿俸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중엽, 전시의 분급제는 토지겸병과 전시과 자체 운영방식에 의해 관료지급으로서 그 의미를 잃게된다. 관리의 진퇴˙이동이 거듭됨으로 토지의 수수˙첨삭을 조정하는 것이 어려웠고, 더욱이 가문중심의 세습적 귀족사회에서 관직을 매개로 職田이 수수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경향은 직전의 절대량을 감축시켰고, 가문전통이 없는 신진관료들은 田柴를 지급 받을 수 없게 되었으며 따라서 녹봉만이 관리들의 보편적 공식상의 관료지급대상이 된다. 하지만 녹봉 또한 문란한 수취˙토지제도로 인한 국가 재정난으로 인해 감급되는 등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더욱이 수 십 년의 대몽항쟁 기간동안 전국이 전화(戰禍)로 황폐되자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그러한 형편에 새로운 해결책으로서 토지의 급여가 처음 시도된 것이 ‘分田代祿’의 원칙을 마련하여 給田都監(급전도감)을 설치한 것이다. 허나 한정된 토지로 충분한 급전은 불가능하였다.(고종44년, 1257) 개경 환도 후 고려조정의 통치력이 차츰 회복되자 ‘분전대록’의 선례를 확대 실시하여 원종 11년(1271) 京畿 8懸의 토지를 양반관료들에게 지급함으로써 정식으로 녹과전의 성립을 보게 된다.

2. 녹과전의 설치

ⅰ. 성격, 특징
녹과전은 경기지역에 한해 職役과 연계되어 있던 半丁을 파하여 양반관료에게 지급하였다. 이것은 이 지역에서부터, 이후 보편적현상이 되는 役과 土地의 분리현상을 정부가 일부나마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예전에 특정한 직역(대표적으로 군역・기인역 등)을 지면서 반정에 대한 1/10 면조권 혹은 수조권을 가지던 것을 해제하여 그 수조권을 양반관료에게 대신 지급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시과˙녹과전˙과전법은 본질적으로 토지지배의 측면에서 동일한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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