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불교와선
- 최초 등록일
- 2014.06.08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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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당대의 불교
2, 당대의 선종
본문내용
당조는 수나라를 계승하면서 수가 완성한 통일의 기초위에 성립괸 당(唐 618~907)은 중국 전역과 중앙아시아에까지 미치는 거대한 국가를 이룩하였다. 황실에서는 지신들이 노자의 자손이라 주장하며 도교를 선호하였지만, 정부에서는 모든 종교에게 발전의 기회를 주는 종교적인 관용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당대의 불교는 수나라에 이어 종파적으로도 대성을 보게 된다.
남북조시대의 수입 불교 영역에서 벗어나 중국불교의 독자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당 왕실의 불교보호정책과 함께 고승석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지의대사가 성립한 천태종부터 현장, 규기의 법상종, 신수 혜능의 선종. 법장이 화엄종, 도선의 남산율종, 선무의 금강지. 불공의 밀교, 도작. 선도에의 한 정토교, 길장의 삼론종 등이 팔대종파 중에서 천태종이외에 다른 종파 모두 당대에서 독립되고 대성한 것들이다. 이들은 독특한 중국적인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적인 특성이 작용하여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멀리 떨어진 산속의 사원들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의 부유한 절에서도 지적인 열정에 넘친 승려들이 각 종파의 소의경전(所依經典)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일반적으로 보아 당대의 불교는 더 중국적인 성격을 띠었고, 국가와 더 밀접하게 일체화되었으며, 국가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승려와 사원에 관계된 행정을 담당한 승단의 관리들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이들은 일반적으로 세속 관리의 감독하에 있었다.
당 왕실은 불교를 어용종교로 삼고 일일이 천하통치의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고조는 무덕 원년(618) 무차대회를 열어서 승도 69명을 태극전에 모아놓고 7일간 수행케 하였고, 태종은 전관 2년(628) 전몰자를 위하여 수도의 여러 절에 명을 내려 칠일칠야재를 올리고 참회를 행하게 하였으며 5월에는 선조들의 기일을 기하여 장경사에서 재를 지냈는데 이를 영식이라 하였다.
참고 자료
「중국불교사」대원정사 1992년
「중국불교사」계환옮김 우리출판사 1996년
k.s 케네쓰첸 박해광 옮김 「중국불교 上」민족사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