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지주제
- 최초 등록일
- 2014.06.06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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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조선후기사회 변화)
Ⅱ. 농업생산력의 발전
1. 농법의 변화
2. 농기구 및 수리시설 보급
Ⅲ. 지주제 변동과 농촌사회 분화
1. 토지소유 집중화와 광작의 출현
2. 농민층 분화
3. 민전과 소작료 형태의 변화
Ⅳ. 자본주의 맹아론
1. 자본주의 맹아론의 등장
2. 자본주의 맹아론을 둘러싼 논쟁
Ⅴ. 맺음말 (조원들의 견해)
Ⅵ. 참고자료
본문내용
조선왕조는 518년이라는 치세 기간 동안 임진·정유·병자·정묘라는 네 차례의 전란을 도합 44년에 걸쳐 겪었다. 주목할 것은 그것이 모두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양란 이후의 조선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회가 되었다. 오랜 전란으로 황폐화된 농경지, 빈발하는 기근과 엄습하는 질병, 가족과 고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 난민들, 와해되어 가는 유교적 사회규범과 동요하는 신분 질서, 오랑캐(여진, 왜)에 유린당한 문명국의 자존심 등 조선이 당한 물질적·정신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무너져 가는 왕조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실리와 명분, 경제적 피해 복구와 사회적 기강 확립이라는 두 가지 처방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다. 우선 전자의 처방으로 새로운 농법이 도입되었다. 이앙법(移秧法)과 견종법(畎種法)이 보급되었고, 고구마·감자·고추와 같은 새로운 작물이 도입되었으며 담배·인삼과 같은 상업 작물의 재배가 확산되었다. 버려졌던 농토를 개간하여 경지 면적이 늘어나고 토지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인구도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영조 연간에는 이미 전쟁 이전 수준에 근접하는 회복세를 나타냈다. 이러한 양란으로 중세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여러 부문들이 동요되면서 중세사회의 구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중 략>
자본주의 맹아론은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자본주의의 맹아를 조선후기 사회에서 찾아냄으로서 민족해방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봉건제사회에서 근대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부분의 근거를 만들어내기 위해 조선후기 역사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을 찾으려는 것이 지나치게 집중했다.
조선후기 농업부문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고 이러한 발전으로 초기 농업자본의 형성과정이나 농민층의 분화를 설명할 수 있었기에 그 연구의 성과는 매우 컸다고 볼 수 있으나 조선후기 상품화폐경제는 국가적, 지주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경영형 부농이 성립해있었다 할지라도 그 부농이 그들의 부로 봉건적인 권리를 사들여 자신들 스스로 봉건적 지주로 진화해 지주적 경영을 하게 될 가능성이 존재했다.
참고 자료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19163&cid=831&categoryId=831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alsn76?Redirect=Log&logNo=4019967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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