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정책결정과정] 중앙 정부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은 가능한 것인가?
- 최초 등록일
- 2003.06.12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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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중앙 정부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은 가능한 것인가?
- 쿠바 핵미사일 위기 시 미국 케네디 행정부의 정책 결정을 중심으로
Ⅰ. 서론
Ⅱ. 쿠바 핵미사일 위기 전개 과정(D-13)
Ⅲ. 케네디 행정부의 정책 결정 내용
Ⅳ. 케네디 행정부의 정책 결정 영향 요소
Ⅴ. 이론과 이론 사이에서
Ⅵ. 결론(국가의 합리적인 결정 방법)
본문내용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는 1962년 10월 22일∼11월 2일의 12일간 소련의 핵탄도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시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여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던 국제적 위기로서 1959년 수립된 쿠바의 혁명정부에 대하여 미국은 1961년 4월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에 의한 쿠바 반(反)혁명군의 침공작전(피그만 사건)을 시작하고, 미주기구(OAS)로부터의 쿠바 축출, 미국 해 ·공군의 영해 ·영공 침범 등 군사 ·외교 압력을 가하였다. 이런 속에서 쿠바는 1962년 9월 ‘소련촵쿠바 무기원조협정’을 체결하여 소련의 미사일을 도입하였고 미국은 그 해 10월 14일 중거리탄도미사일의 발사대가 쿠바에 건설 중임을 공중 촬영으로 확인하였다. 22일 미국 대통령 J.F.케네디는 텔레비전 전국 방영을 통하여 처음으로“소련은 서반구에 대하여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쿠바에 건설 중”이라고 공포하고, 쿠바에 대하여 해상봉쇄 조치를 취하였다. 케네디는 소련의 N.S.흐루시초프 서기장에 국제연합의 감시 하에 공격용 무기를 철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전세계의 긴박감 속에서 소련은 26일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미사일을 철거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하고, 27일 쿠바의 소련 미사일 기지와 터키의 미국 미사일 기지의 상호 철수를 제안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27일의 제안을 무시하고, 26일의 제안을 수락할 것을 결정하였다. 28일 흐루시초프는 미사일의 철거를 명령하고 쿠바로 향하던 16척의 소련 선단(船團)의 방향을 소련으로 돌림으로써 11월 2일 위기는 사라졌다. 소련이 쿠바로부터의 폭격기 철거에 동의한 20일 미국은 해상봉쇄를 풀었으며, 12월 7일 소련은 공격용 무기를 쿠바로부터 철거하였음을 미국에 통고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63년 미 ·소간에 핫라인(hot line:긴급 통신 연락선)이 개설되었고, 핵전쟁 회피라는 공통의 과제 하에서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모스크바 조약)’이 체결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