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황순원의 <비늘>

등록일 2003.06.12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1.황순원의 생애
2.<비늘>의 줄거리
3. 설화의 소설화 -'비늘'과 '명주가'
1) <비늘>에 나타난 <명주가>
2)<명주가>와 <비늘>의 구조의 비교
3) <비늘>과 <명주가>에 나타난 물의 의미

본문내용

황순원은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 빙장리에서 부친 찬영과 모친 장찬우의 장남으로 출생한다. 그의 모친은 평안남도 대동군 천서리 일명 목넘이 마을의 순박한 농민의 딸로 알려져 있다. 모친의 고향은 그의 소설 <목넘이 마을의 개>에서 "어디를 가려도 목을 넘어야 했다. 남쪽만은 꽤 길게 굽이돈 골짜기를 가려도 산목을 넘어야 했다. 그래서 목넘이 마을이라 불렀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황순원의 작품의 상상력은 "어머니"에게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그가 창조한 인물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인물들은 모두 모성애적 성향을 강하게 지닌 인물이란 점이 이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별과 같이 살다>의 곰녀가 그러하며, <카인의 후예>의 오작녀가 그러하다.
황순원 문학의 모성 편향성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부친이 부재했던 유년기의 추억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부친이 3·1 운동으로 인해 옥살이를 할 당시 5세였던 황순원은 고향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보내게 된다.
황순원의 나이 7세 때 그의 집은 평양으로 이사하고, 2년 뒤에는 숭덕소학교에 입학한다. 15세때인 1921년, 그는 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한다. 오산학교 시절, 작가가 가장 감명적으로 술회하는 '늙을수록 아름다워지는 남자', 남강 이승훈 선생을 만나게 된다. 오산중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전학한다. 숭실은 부친과 삼촌 세분의 모교이기도 하며, 부친이 한동안 사감으로 지냈던 학교이기도 하다. 1934년 숭실중학을 졸업한 황순원은 동경 유학길에 오른다. 1939년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주로 고향에 머물면서 창작활동에 전념한다.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해방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잠시 , 황순원 일가는 고향을 등지고 삶의 터전을 남으로 옮기게 된다. 북이 공산화됨에 따라 탄압과 숙청이 극심해지자 38선을 넘어 월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도 그는 꾸준히 창작에 전념하여 1948년에는 해방 후에 쓴 단편만을 모은 단편집 『목넘이 마을의 개』를 간행하기에 이른다.

참고 자료

강등학 외 9명, 한국구비문학의 이해, 2000, 月印
김종회편, 『황순원』, 새미작가론총서, 새미, 1998
장덕순, 설화문학, 이우사, 1980
이정숙, 『민화의 소설화에 대한 고찰』 (한성대학교논문집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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