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세사] 원의 고려 간접지배

등록일 2003.06.12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400원

소개글

전세계적으로 영토확장을 꾀했던 몽고제국의 고려에 대한 간접지배에 대한 글입니다. 다른 영토내 국가들은 직접적으로 지배를 했던 당대 강대국 몽고가 유독 고려만은 간접지배방식을 택한 이유나 근거를 제시했떠여... 필요하시믄 마니 받으세여...

목차

없음

본문내용

Ⅱ. 본 론
1. 여·몽전쟁의 개관 및 진행과정
위와 같은 국제 정세속에서 원은 대외적인 팽창을 단행하였고, 그 결과로 이어진 것이 각국에 대한 정복 전쟁의 수행이었다. 여·몽전쟁의 발발 및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무인정권이 안정되어 갈 무렵에 대륙에서는 몽고족이 흥기하여 국제정세는 큰 변동을 맞게 되었다. 북아시아의 유목민적으로 오랫동안 거란과 금에 예속되어 있던 몽고족은 13세기 초 칭기즈칸(成吉思汗, Chingiz Khan)이 통일세력을 형성하게 되면서부터 동아시아 대륙은 물론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구라파에까지 진출하여 대제국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금의 쇠약을 틈타 일시 독립세력을 형성했던 거란족이 몽고군에게 쫓기어 고려 영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리하여 고려는 몽고와 함께 강동성의 거란을 토벌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고려와 몽고 사이의 최초의 접촉이었다.(고종 6년, 1219) 당시 거란인 포로들은 인구가 적은 주(州)·군(郡)·현(縣)에 나누어 살게 하였는데, 이를 거란장(契丹場)이라 한다. 이후 몽고는 그 공으로 매년 고려로부터 과중한 공물을 취해 갔다. 갈수록 지나친 공물의 요구는 당시 집권자인 최우의 반감을 사서 이행되지 않기도 하였다. 이즈음 몽고는 남송(南宋)정벌에 앞서 고려에 대한 견제가 요구되던 중 마침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가 귀국도중 피살된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구실삼아 침입을 해왔다.(고종 18년, 1231) 살례탑(撤禮塔)이 거느린 몽고군은 귀주(龜州)에서 고려군을 물리치고, 개경까지 압박하자 최우는 우선 강화를 성립시켰다. 몽고는 달노화적(達魯花赤)이란 감독관을 서북 면에 두고, 군사를 철수하였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편저, 『한국사 7 - 고려; 무신정권과 대몽항쟁』, 국사편찬위원회, 1973.
강만길 外 12인 편저, 『한국사 6』, 한길사, 1994.
국방군사연구소, 『한민족 전쟁통사Ⅱ』, 1993
배용일, 『한국사 개론』, 대왕사, 1993
김임규 外 2인, 『한국민족문화와 의식』, 정훈출판사, 1993
고병익, 「고려와 원의 관계」, 『동양학 7』, 단국대 동양학 연구소, 1977
주채혁, 「몽골·고려사 연구의 재검토 - 몽골·고려 전쟁사 연구의 시각문제」, 『애산학보』, 1989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