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산업정책

등록일 2003.06.12 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일본의 자동차 수입억제의 역사
⊙ 전전기(戰前期)
⊙ 전후기(戰後期)
2. 전후 재건·발전기의 목표
⊙ 전후 일본의 전략과 목표
⊙ 일본 자동차산업의 기반구축
⊙ 국민차 구상
3. 산업재편과 외국인투자 자유화
1). 자동차산업의 재편
⊙ 삼분화(三分化) 구상
⊙ 특정산업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
⊙ 합병과 제휴
⊙ 닛산-프린스 합병
⊙ 도요타-히노, 도요타-다이하쓰 합병
⊙ 미쓰비시-이스즈-후지
2). 외국인투자 자유화
⊙ 엔진 수입 자유화
⊙ 자동차산업의 외국인투자 자유화 논쟁
⊙ 이분화 구상과 미쓰비시의 반기
⊙ 외국인투자 자유화의 완결

Ⅲ.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 이분화 구상과 미쓰비시의 반기

주미 일본 대사가 미 국무부에 각서를 전달한 다음날인 1968년 8월 20일, 다카시마 통산성 중공업국 부국장은 다시 산업구조 조정 문제를 제기했다. 다카시마는 자동차산업을 이분화 할 경우 닛산과 도요타가 연간200만 대, 기타 업체가 연간 100만 대, 합계 300만 대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통산성의 이러한 구상은 과거 3분화 구상에서도 중심업체로 지목되었던 닛산이나 도요타에게는 결코 새삼스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통산성의 이분화 구상을 잠재적 위협으로 받아들인 군소 업체들은 이를 「닛산과 도요타의 과점을 강화, 궁극적으로는 군소 업체들은 말살시키려는 획책」으로 간주했다. 통산성의 이분화 구상은 미쓰비시­미스즈­후즈간의 제휴 실패와 「8·20 각서」에 자극되어 나온 결과였으나, 통산성의 이러한 움직임은 자동차산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와 기업 간의 연합전선으로 해석되어왔던 「하코네 선언」으로부터 군소 업체들을 이탈하게 만들었다. 결국 군소 업체들은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책의 일환으로 미국 자동차회사와의 제휴를 모색하게 되었다. 군소 업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분화 개념은 군소 업체들의 이익을 무시하는 지나친 행정개입이었다.
한편 미쓰비시도 정부의 끈질긴 합병유도 정책에 대항하여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있었다. 1969년 5월 18일 마키타 미쓰비시중공업 사장은 미쓰비시와 크라이슬러가 일본에 합작회사를 설립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합의 내용에는 첫째, 미쓰비시와 크라이슬러의 지분율은 65대 35로 할 것, 둘째 합작기업은 연구개발부문에서도 양 사간의 협력창구가 될 것 등이 포함돼 있었다. 미쓰비시-클라이슬러 제휴는 통산성은 물론 업계에도 큰 충격과 파문을 일으켰다.

참고 자료

1. 정몽준, 『일본의 정부와 기업관계』, 한국경제신문사, 1995
1. 日本經濟의 오늘과 내일 - 고려원, 지은이: 일본 경단련 옮긴이: 신한종합연구소(1992)
2. 김성철. 『일본의 산업조정과 경제구조개혁』. 세종연구소.
3. 이지평 ,『일본산업의 과잉공급 해소방안과 시사점』,1999. 8.
4. 한국산업경제기술원 『일본의 산업정책』서울.
5. 안풍모, 김인중, 박진수 『일본의 산업구조조정과 업종별 사례』서울:산업연구소
6. 이종훈, 日本經濟論, 法文社,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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