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청계천 복원사업, 판교신도시 개발, 아파트 청약

등록일 2003.06.12 한글 (hwp) | 3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직접 수일에 걸쳐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목차

1. 청계천 복원 사업
1) 청계천의 역사
2) 청계천 복원 사업 계획
3) 청계천 복원 사업의 이점
4) 청계천 복원 사업의 문제점
5) 청계천 복원 사업에 있어서의 발전방향

2. 판교 신도시 개발
1) 판교 신도시 개발 계획
2) 판교 신도시 개발의 이점
3) 판교 신도시 개발의 문제점
4) 판교 신도시 개발에 있어서의 발전방향

3. 아파트 청약
1) 아파트 청약제도
2) 달라진 청약제도
3) 아파트 청약제도의 문제점

본문내용

1. 청계천 복원 사업
1) 청계천의 역사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으로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의 남쪽 기슭,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연장 10.92km의 도시 하천이다.
청계천 유역은 총 면적 50.96㎢로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1394년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도성 안을 지리적으로 구분했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구분하는 상징적인 경계선으로 작용했다.
도성 내에 있었던 청계천은 주민 생활에 위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컸는데, 무엇보다 하천의 범람이 문제였다.
1407년 서울의 하천이 범람, 근본적인 조치를 위해 1411년 11월 개거도감을 설치하고 52,800명의 인원을 동원한 대규모 개천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때의 공사는 일부 구간의 하상을 파내고 하폭을 넓히는 한편 돌과 나무로 제방을 쌓는 것이었다. 개천 역사가 종결된 후 개천도감은 그대로 행랑조성도감이 되었다.
이후 세종 때에는 도성의 개수와 방수, 방화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수성금화도감이 설치되었고 성종 때에는 개천가에 버드나무를 심어 수해에 대비했다.
한편 개천은 최적의 자연적인 하수도이기도 했다. 조선초기 그 용도를 둘러싼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종대에 개천의 용도는 하수도로 낙착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 인구의 증가와 자연재해 빈발이라는 상황에서 개천이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되는 근본적인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