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위작설과 진본설)
- 최초 등록일
- 2003.06.11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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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현재 우리는 두가지의 『화랑세기』를 갖게 되었는데 그 하나는 1989년에 공개된 『화랑세기』(이를 초록본(抄錄本)이라함)와 1995년 4월에 알려진『화랑세기』(이를 모본(母本)이라함)이다. 본래 화랑세기는 김대문(金大問)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그가 저술한 원본(原本)『화랑세기』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 학계에 알려진『화랑세기』는 한학자(漢學者)인 박창화(朴昌和)가 일본 궁내성 도서료에서 근무하던 중 김대문의『화랑세기』를 접하고 이를 따로 베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창화가 필사한『화랑세기』가 김대문의『화랑세기』의 필사본이 맞는지에 대해 학계에서는 초록본과 모본이 진본이냐 위작이냐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다.
여기서 먼저 필사본『화랑세기』의 초록본과 모본에 대한 관계를 알아보자. 초록본은 모본의 일부를 발췌한 것인데 1989년에 공개된 초록본은 뒷부분이 결락되고 현재는 앞부분의 32면이 남아 있다. 그 안에는 서문에 이어 1세 풍월주(風月主)인 위화랑(魏花郞)에서 15세 풍월주(風月主)인 김유신(金庾信)전의 첫면까지 남아 있다. 그에 비하여 1995년에 알려진 모본은 4세 풍월주(風月主)인 이화랑(二花郞)전의 뒷부분 3면부터 책의 끝까지 남아 있다. 초록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그 하나는 풍월주 전기(傳記)의 본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찬(贊)이다. 한편 모본에는 전기(傳記)의 본문에 이어 찬(贊)이 나오는 것 같지만 그 뒤에 세계(世系)가 나오고 있어 초록본과 차이가 있다. 초록본은 모본을 발췌한 것이지만 발췌비율은 일정하지가 않다. 가장 적게 발췌한 전기는 문노(文努)전으로 모본에는 2,400자가 있는데 초록본에는 281자 정도만 발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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