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교육기관 -향교
- 최초 등록일
- 2014.05.08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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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향교란?
3. 향교의 교관
4. 향교의 학생
5. 향교의 교과와 생활
6. 향교의 재정
7. 향교의 배치
8. 향교 속 또 다른 비밀 - 나무
9. 문화재 관리의 안타까움
10.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수많은 문화재 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까?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사범대 학생으로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교육의 변천사를 알아보기 위해 향교를 골라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교직과목 중에서도 교육역사와 철학이 있지만, 우리나라 교육과정과 교육행정 등은 1950년대 당시 미국에서 여과 없이 들여온 것이기에 우리나라 사정과 동떨어진 것도 있고, 교육 역사 대부분도 서양의 역사가 주(主)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예로 향교 조사를 하면서, 그 당시 어떤 교재를 사용했는지를 알아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수 많은 교재 중 세종 집권 시기에 출간된 삼강행실도(좌측 하단 그림)는 백성들의 교육을 위한 일련의 조선시대 윤리·도덕 교과서 중 제일 먼저 발간(1434)되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이 읽혀진 책이며, 충·효·정의 삼강이 조선시대의 사회 전반에 걸친 정신적 기반으로 되어 있던 만큼, 사회·문화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녔습니다.
<중 략>
파주향교 같은 경우에는 향교 옆에 소총사격장과 K-9자주포와, 88mm 박격포사격장이 있어서 일부 벽에 균열과 하마비가 있어야 할 곳에 사격장이 들어섬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뿌리(문화)를 지킬 줄 알아야 진정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믿음을 군생활 할 때에도 가지고 있었는데, 파주향교가 처한 실태를 보며 정말 안쓰러웠다.
향교는 그렇다하더라도 성균관은 대학 안에 있고, 조선시대 교육의 대표상징이기에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줄 알았지만, 성균관배치표에는 벌써부터 누군가가 칼로 찍어 놓은 상처들과 성균관 외삼문과 그 벽에 바짝 주차한 차들, 성균관 바로 옆에 결혼식장과 대강당이 들어서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담배와 침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성균관을 보며 정말 눈물이 흘렀다. 강의 시간에 일본이 우리나라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절실히 체감했다. 현실성 있는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함으로 하루빨리 몸살을 앓고 있는 문화재를 구했으면 좋겠다. 문화재를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를 어떻게 하면 보존하여 후세에 남길 수 있는지가 문화재를 보는 올바른 시각이 아닌가 싶다.
참고 자료
김호일, 한국의 향교, 대원사
윤희면, 조선 후기 향교 연구, 일조각
이해준, 조선후기 서원연구와 향촌사회사, 한국사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김기수, 교육의 역사와 철학강의
Google 사진 4장
(http://all.nricp.go.kr/search/search3.jsp?mcidx=22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