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근세사] 명의 건국과 주원장의 정책
- 최초 등록일
- 2003.06.11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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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홍건군과 주원장
3. 홍무제의 통치방침
4. 홍무제의 숙청작업
5. 제도의 정비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스스로를 중화라 부르며 주변 제민족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그들을 멸시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자긍심에 걸맞게 찬란하고 뛰어난 문화를 꽃피워, 주변 국가들에게 전파하는 동시에 그들 국가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던 중국이 혼란에 빠지면서 주변의 제민족들은 서서히 중원으로 침투하였고, 요와 금을 거쳐 몽고족은 원을 건국하여 중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마침내 중국인들은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이민족들에 의해 똑같이 지배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민족 왕조인 원의 지배는 원말 전국을 뒤흔든 백련교계 홍건군의 농민반란 속에서 붕괴되었다. 이 홍건군 출신으로 한민족 왕조를 재흥시킨 것이 명 태조였다. 태조의 치하에서 원조의 호속이 일소되고 한민족 문화가 고양되었으며, 관제면에서 황제독재체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후에 만주족이 세운 청에 의해 한족은 또다시 이민족의 지배에 들어가지만 어쨌든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민족국가를 탄생시킨 것이 바로 명이었던 것이다.
1368년부터 1644년에 이르는 명대의 276년간 중국의 인구는 8,000만에서 1억 6,000만으로 두 배로 늘어갔다. 파괴적인 내전은 거의 없었으며 교육과 철학, 문학과 예술 면에서 성취한 업적은 신사사회의 높은 문화수준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명의 교체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명조 정권은 처음에는 몽골을 몰아내고 저지하기 위해서 군사화되었지만, 그 다음에는 국내의 안정을 이룩하고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차단하려고 노력했다. 몽골 정복자를 몰아내고 부활한 한족의 국가는 송을 계승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실제적으로 원대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이론적으로는 한과 당의 모델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명의 건국과 아울러 명을 세운 태조, 즉 주원장의 활동과 그의 정책에 대하여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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