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눌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14.04.23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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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눌의 생와와 사상에 관한, 지눌 연구 감상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지눌의 생애
2. 지눌의 사상
1) 선과 교학 사이의 갈등
2) 정혜쌍수
3) 돈오점수
3. 결론
본문내용
지눌(知訥, 1158~1210)은 한국의 대표적 고승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중국의 선법을 수용하면서도 철저하게 자기화하여 ‘보조선’(지눌선)의 가풍을 열었다. 지눌이 확립한 선교 즉 선법과 화엄 화회의 가풍은 이후 한국불교의 전통이 되었다. 지눌은 사법계설 중심의 법장 화엄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보살 십지 수행에 기초한 통현 화엄을 원용하였다. 그리하여 선법과 화엄의 실천적 종합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눌은 수도 개성의 서쪽인 황해도 서흥(瑞興, 洞州)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지눌’이고 자호는 ‘목우자’(牧牛子)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이 많았다. 온갖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다. 부친이 부처님께 “병을 낫게 해 주시면 아들을 출가시켜 부처님을 섬기도록 하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그러자 병이 곧 나았다. 지눌은 9살 때에 출가하였다. 구족계를 받은 뒤에는 불교를 배우면서도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았다.
24세(1182)에 선과에 합격하였다, 그 뒤 남쪽으로 유행하다가 창평(昌平) 청원사(淸源/原寺)에 이르러 주석하였다. 어느 날 우연히 『육조단경』을 보다가 “진여자성이 생각을 일으키므로 육근이 비록 보고 듣고 깨닫고 앎이 있더라도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아니하며 항상 자재하느니라.”라는 구절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이후 그는 명예와 이익을 싫어하고 항상 깊은 산중에 숨어 고통을 무릅쓰고 정진하였다. 도를 닦으면서 그는 갑작스런 위급에도 구도 정신을 버리지 않았다.
28세(1185)에 하가산(下柯山, 鶴駕山) 보문사에 주석하면서 장자의 『화엄경합론』을 보다가 거듭 믿는 마음을 일으켰다. 『화엄경론』의 오묘한 이치를 찾아내고 깊이 숨어 있는 난해한 뜻을 드러내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평생의 사상적 화두였던 ‘선교 일원’(禪敎一元)의 진경을 열었다. 지견이 점점 밝아져 늘 마음을 원돈관문(圓頓觀門)에 두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