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탄생과 삶
- 최초 등록일
- 2014.04.19
- 최종 저작일
- 20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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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김유신의 가계(家系)
2. 김무력(金武力)
3. 김서현(金舒玄)
4. 김서현과 만명부인
5. 김유신의 누이 문희와 보희
6. 김유신 탄생설화
7. 김유신의 성장과정
8. 김유신 관련 설화
본문내용
김유신은 왕경 사람으로, 그 12대조는 수로왕이며, 후한건무(後漢建武) 18년인 임인(서기 42)에 구봉에 올라서 가락(駕洛)의 9촌을 바라보고, 드디어 그 땅에 나라를 세우고 가야(加耶)라 이름하였다가 뒤에 금관국(金官國)이라 고쳤다. 그 자손은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 9대손 구해(仇亥)에 이르렀는데 이는 곧 김유신의 증조이다. 구해는 금관국의 마지막 왕으로 신라에 항복한 구충 대왕이며 김유신의 고조는 감지 대왕이다. 감지 대왕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신라의 골품있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 신라 조정에 복종하고 따랐다. 감지 대왕은 출충 각간의 딸 숙씨와 혼인을 하여 구충을 낳았다. 구충대왕은 계봉의 딸 계화를 아내로 맞아 무력과 무득을 낳았다. 그런데 가야에서는 감지 대왕 이전의 세 왕들도 모두 신라의 여자와 혼인을 하였다. 그 중 좌지왕은 신라 도령 아찬의 딸 복수를 아내로 맞아 취희를 낳자, 복수를 정후로 삼았다.
<중 략>
또한 백제가 정복된 해에 소정방의 백제지역 분봉(分封) 유혹도 뿌리쳤으며 고구려가 엄존하는 상황에선 정면대결을 피해 신라군을 백제 유민군으로 위장하여 당나라군의 행동에 군사적인 대처를 하였다. 문무왕 13년(673) 봄에 요성(妖星)이 나타나고 지진이 일어났으며, 또한 그 해 6월에 사람들이 보니까 군복을 입고 무기를 가진 수십 명의 군사들이 유신의 집으로부터 울며 나와서는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유신은 이 말을 듣고 「이는 반드시 몰래 나를 보호하던 음병이 나의 복이 다한 것을 보고 가버린 것이니, 곧 내가 죽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십여 일 뒤에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웠다. 그 해 7월 1일에 김유신은 사제(私第)의 정침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그 나이가 79세였다.
참고 자료
『삼국사기』하 / 김부식 / 신서원 / 1995
상상하는 한국사 2 (삼국의 흥망과 통일) / 김정환 / 푸른숲 / 1996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 이종욱 / 김영사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