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위대한손-로댕'전시회를 다녀와서

등록일 2003.06.07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문화방송에서 후원한 '위대한손 - 오귀스트 로댕'전시회 관람기 입니다

목차

1. 로댕의 일대기 및 대표작
2. '위대한손 - 오귀스트 로댕 전시회를 다녀와서'

본문내용

로댕은 1840년 11월 12일 파리의 서민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장 밥티스트 로댕은 노르망디의 농촌에서 파리로 이주, 경시청의 하급 형사로 지냈으며, 어머니 마리는 프랑스의 전형적인 농촌 여성으로 언제나 조용히 숨어서 친절을 베푸는 형이었다. 로댕은 이러한 부모에게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인내와 독립심을 물려 받게 되었고 그리고 로댕의 성품은 완고하고 고지식했으며, 불굴의 정열과 뜨거운 야망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생활에 있어서는 근검정신이 투철했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철저한 구두쇠정신을 발휘, 다른 사람들로부터 '노랭이'라는 욕을 먹을 정도로 항상 절제된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는 초등학교시절부터 그림그리기를 매우 좋아했으나,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여 비싼 미술학교에는 다닐 수가 없었고 수업료가 대체로 싼 소묘와 수학을 가르치는 직업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가구설계를 위한 제도술을 지도하는 이 학교에서 로댕은 사실파의 대가인 칼포와 르콕 드 보아보드랑, 그리고 화가 벨록과 같은 훌륭한 교사들에게 수업을 받았다. 이무렵 로댕은 루브르미술관이나 국립도서관 판화부 등을 드나들며 고대작품을 모사(模寫)하는데 주력하였고 또한 페티테콜이라는 이 학교에서 모델링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후에 로댕은 "난생 처음으로 나는 예술가들의 점토를 보았다."고 술회하면서, "그 즉시 나는 이 사람들과 같이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하였다.

17세까지 로댕은 상급미술학교인 <그랑데콜> 즉 <에콜 드 보자르>에 3번이나 응시했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20세 성년이 된 로댕은 아버지로부터 독립, 먹고살기 위해 생활전선에 직접 뛰어 들게 되는데 그 당시에는 건축미술이 유행하여 그는 건축물 장식가의 제자로 입문하여 건축조각, 석고뜨기작업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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