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라이벌] 묘청 VS 김부식

등록일 2003.06.07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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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라이벌] 묘청 VS 김부식
-혼란한 정치상황 맞아 새 시대 도모하다 좌절 기득권 누리며 막강 권력 쥐고 개혁파에 대항-
이자겸 세력이 제거됐으나 그 후유증은 컸다. 궁궐이 불타고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다. 개경의 민심은 흉흉했고 왕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인종 3년(1125) 군신관계를 강요해왔던 금나라의 압박도 계속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추락한 왕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이 황제를 칭하 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는 등 자주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불손한 금나라를 정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수도도 서경(평양)으로 옮겨 새롭게 시작할 것을 요구한 묘청 일파가 그랬다.

묘청(妙淸)이 어디서, 언제, 그리고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록이 없다. 서경의 중이었으며 후에 이름을 정심(淨心)으로 개명했다는 정도밖에 알 수가 없다. 그는 풍수도참설에 능했다. 서경 출신의 정지상도 그의 말을 깊이 믿었다. 개경은 지덕이 쇠 진했기 때문에 궁궐이 불타 없어졌으며 서경은 왕기가 있어 새 수도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종도 이 말을 믿고 재위 5년 서경에 행차, 관정도량을 베풀고 유신정령을 반포했다. 묘청은 또 건의했다.

“신 등이 보건대 서경의 임원역 땅은 음양가들이 이르는 바 대화세 (大華勢)의 곳입니다. 만약에 궁궐을 세우고 임어하시면 가히 천하를 합병할 수 있고 금나라가 조공을 바치고 항복할 것이며 주변의 36국도 모두 귀순하게 될 것입니다.”

인종은 서경 임원역에 가서 지세를 보게 했다. 그리고 김안을 시켜 궁궐을 짓게 했다.

인종 7년 대화궁이 완성되자 인종은 또 서경으로 행차했다. 묘청 일파는 이때 서경 천도의 목적을 위해 술책을 쓰기도 했다. 정지상은 어느 날 인종에게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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