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바로크와 로코코 비교

등록일 2003.06.07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600원

소개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 바로크에서 로코코로 전환된 그 시대적 배경

로코코는 바로크 예술에서 즐겨 쓰던 부정형이나 유동적인 조형요소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바로크의 연장 또는 변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바로크가 지녔던 충만한 생동감이나 장중한 위압감 따위가 로코코에서는 세련미나 화려한 유희적 정조로 바뀌었다. 다시 말하면 바로크가 남성적, 의지적임에 반하여 로코코는 여성적, 감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코와 로코코 예술이 이러한 남성적, 여성적인 극명한 대립을 이루는 것은 그 당시의 사회적 변화 때문이다. 중세 천년동안 예술과 장식의 절대 목적은 신에게로의 귀의였고, 그에 맞추어 하늘에 닿고자 하는 뾰족한 첨탑, 뾰족한 창틀과 같은 고딕양식이 나온 것이다. 기독교적 양식에 반기를 들고 인본주의, 근본적으로 신 중심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르네상스가 15세기 등장하여 16세기까지 200여 년 계속 이어져 왔다.
르네상스가 꽃핀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부유한 금융가 출신인 메디치가(家)가 정치 권력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메디치 가문은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한 도구로써 미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그들은 르네상스 고전주의보다 세련된 우아함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후원자의 취향과 그 외 사회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매너리즘의 독특한 미술 양식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매너리즘 양식과 함께,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로 표현되는 절대주의 정치체계가 자리잡으면서 바로크가 발전하게 된 것이다. 왕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자 장식적이고 화려한 양식을 요구하였다. 즉 자신의 위엄을 드러낼 상징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크고 화려하고 번쩍번쩍한 왕궁을 짓고, 그 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며 기하학적으로 잘 짜여진 정원을 배치하고 건물 안의 회랑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으며, 천장을 우러러 보도록 높였다. 그것의 가장 큰 결과물이 베르사이유 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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