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신라의 불교에대한 연구

등록일 2003.06.07 | 최종수정일 2015.06.22 한글 (hwp) | 50페이지 | 가격 3,000원

목차

1. 신라의 불교 수용
2. 신라의 왕실 호국 불교
3. 신라의 민중불교
4. 신라 불교학의 발전
5. 신라 불교의 개혁 - 정토신앙의 대중화
6. 신라 불교의 외국에 대한 영향
7. 신라 불교의 타락과 선종의 수용
8. 미륵신앙의 민중화

본문내용

8세기 후반 이른바 신라 下代에 접어들면서 불교는 귀족적 승관제 및 호국기도법회 등에 의해 왕실 권력과 더욱 밀착 되었다. 경덕왕(742~765년)때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의 석굴암을 창건하여 왕실의 권위를 과시하였고, 왕도 대현을 초빙하여 호국 경전인 금강명경을 강의하게 하는가 하면 황룡사 종과 성덕대왕신종을 주조하고 분황사 약사여래불상을 조성하였다. 특히 구리 12만근을 들여 만든 성덕대왕신종은 경덕왕이 부왕의 명복을 빌고자 만든 것으로서, 번번이 금이 가 주조에 실패하자 어린아이를 쇳물에 산채로 집어넣어 마침내 완성했다는 설화가 깃들어 있다. 종을 칠 때마다 어린아이의 울부짖음 소리가 울려 일명 에밀레종이라 했다는 이 이야기에는 민중의 노동력과 생명까지 약탈하여 이룩하는 봉건지배자들의 호사한 불사에 대한 민중들의 원성이 담겨 있다.

이 시기에 불교는 이와 같이 대규모의 탑. 종. 불상. 사찰을 지어 호사한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 보이고 왕실 귀족의 안녕과 복을 기원해 주었다. 그리고 왕실 귀족으로부터 그 대가로 엄청난 땅과 노비 등을 기부 받았다. 경덕왕 때 信忠이 왕을 위해 斷俗寺를 세우고 거기서 왕의 초상을 모시고 평생 왕의 복을 빌며 살았던 사실은 그 좋은 예라 하겠다.(삼국유사, 卷5, 피은, 신충괘관) 혜공왕(765~780년)이 鷲仙寺에 밭 30結을 기부하여 김유신의 명복을 빌게 한 일이나, 원성왕(785~798년)이 황룡사 승려 智海를 대궐에 불러 50일간 화엄경을 외게 한 일들도 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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