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서
- 최초 등록일
- 2014.04.12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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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관찬사서 동국통감의 해제
(1) 세조대 동국통감 편찬목적 및 배경
(2) 편찬과정
(3) 서술체재와 내용
2. 사찬사서 동국사략의 해제
(1) 편찬배경
(2) 편찬인물
(3) 체재와 내용
(4) 역사관과 사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동국통감(東國通鑑)는 1484년(성종 15년)에 완성되었지만 그 편찬사업은 세조의 발의로 1458년(세조 4년)부터 시작되었다. 세조 때 편찬 목적은 삼국사기와 고려사에서 빠진 부분은 여러 사서에서 채집하여 보충한 다음, 그것들을 올바르게 체계화하여 서술한 편년체 통사를 만드는데 있다. 세조는 정치적으로 군주의 전제왕권을 강화하고 실지회복을 통한 부국강병책을 실시하였다. 통국통감의 편찬에 직접 발의하고 관심을 기울인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원래 고기류의 사서들에 씌어진 내용은 고대국가의 시조(始祖)나 군주들의 출자(出資)를 신성화하고, 군주의 치적이나 행적 등을 과장되게 미화한 것이 대부분이다. 결국 문종과 단종 양대에 걸쳐 약화된 왕권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전제왕권의 확립을 추구하였던 세조의 정치이념과 고기류의 역사인식과는 상호 부합되는 면이 많다.
(2) 편찬과정
성종 14년 이 때 고려사절요와 삼국사절요를 합한 통사로서 동국통감 의 편찬을 제기한 사람은 서거정이었다. 이 때 동국통감의 편찬에 누가 참여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서거정이 연주시격(聯珠詩格)의 주해와 병행하여 동국통감 편찬을 진행하자고 제의했던 점으로 미루어보면, 연주시격의 주해에 참가한 사람들이 역시 동국통감도 편찬하지 않았나 한다. 여기에는 서거정, 노사신, 허종, 어세겸, 유순, 유윤겸, 등 6인이 참여한 바 있다. 만약 이러한 추정이 사실이라면 이들이 모두 훈구계열에 속하는 사람들이므로 이 때 완성된 동국통감은 훈구세력의 역사인식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종은 이 때 완성된 동국통감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다시 편찬하도록 지시하였다. 특히 이 때 성종이 불만을 가진 부분은 사론이었다. 서거정 등 동국통감 편찬자들은 기존의 사론들만 그대로 인용하였을 뿐, 자신들이 직접 사론을 쓰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거정은 후인의 비난이 두려워 사론을 쓰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성종이 사론을 더 첨입하여 편찬하게 한 동국통감은 신편동국통감이라 불렀다. 그 때의 배경에는 사림과 훈구의 대립이 한창일 시기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