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 최초 등록일
- 2003.06.06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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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요약
2.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느낀점
3.심청이는 왜 두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을까 줄거리 느낀점
4.부자유친 줄거리 느낀점
본문내용
1.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내용 요약
1) 난해성-혹은 생략과 여백
우리는 서구교육제도와 플롯,성격,사상 같은 요소를 중요시 하는 서양식 연극의 틀에 익숙해져 있다. 오태석 연극이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 것은 스펙터클, 음악성을 더 중요시하고 생략과 비약을 통해 관객의 몫을 남겨두는 동양식 연극에 우리가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극은 관객에게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생략과 비약을 통해 관객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2) 유년부터 대학까지
11살 때 6.25를 맞게 된 오태석은 아버지가 납북 당하시면서 할머니와 영천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중학교 때 다시 서울로 올라온 그는 그때부터 ‘마스크’로 위장을 한 채 살아가는데 연대에 입학하여 생계를 위해 연희극단에 입단하게 된다.
3) 1960,70년대의 활동
시민예술제에 출품한 <영광>이 당선되면서 극단 회로무대로 그의 연극 인생이 시작된다. 모성의 상실을 이야기한 <웨딩드레스>가 신춘문예에 4년만에 당선되고 그 후 남녀관계에 관한 <환절기>, 싸롱 떼아뜨르에서의 창작 모노드라마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 서양고전을 판소리와 산대를 접목시켜 재구성한 <쇠뚝이 놀이>, 종이 옷을 통해 건습을 시각화한 <초분>, 자승자박의 현실을 전통극으로 풀어낸 <약장사>, 소급 계엄령 직후 사육신을 소재로 생명의 존엄을 나타낸 <태>,적극적인 여성 이야기 ‘이춘풍전’을 각색한 <춘풍의 처>, 가장 서양적인 문법을 닮은 <물보라> 등을 공연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