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합과 전후 독일 외교정책 논쟁

등록일 2003.06.05 | 최종수정일 2014.04.07 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Ⅱ. 유럽통합과 독일의 분단
1. 유럽통합의 배경
2. 독일의 분단과 유럽통합

Ⅲ. 유럽통합과 독일외교정책 논쟁
1. 전후 독일외교정책의 흐름
2. 독일외교정책에 대한 논쟁

Ⅳ. 결 론

본문내용

Ⅱ. 유럽통합과 독일의 분단

1. 유럽통합의 배경

2차 대전으로 완전한 붕괴를 겪은 서유럽은 국가간 경쟁의 무의미함을 깨달은 후, 신선한 재출발의 국면을 설정하고 유럽질서재편성을 위한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출발한 전후 유럽통합운동의 추진 배경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유럽의 지위약화에 대한 인식이다. 전후 내부의 약화되고 분열된 유럽은 세계 중심지로서의 옛 지위를 상실하였고, 이를 정치 경제 군사적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 소가 차지하게 되었다 (Laqueur, 12). 둘째, 실제로 통합운동의 계기는 1946년 9월 19일 처칠(Winston Churchill)의 쮜리히 연설이었다. 다시는 공포로 가득한 참혹한 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모든 정치행동의 지침이 되었다. ) 양차대전을 중심으로 한 유럽통합운동 관련 원전은 다음 참조. Walter Lipgens and Wilfried Loth (ed.), Documents on the History of European: Transnational Organizations of Political Parties and Pressure Group in the Struggle for European Union, 1945-50, vol. Ⅰ Ⅱ Ⅲ Ⅳ (Berlin New York, 1991).
셋째, 사회적 국제적 관계가 질서정연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풍요로운 자유 세계에 대한 간절한 욕구가 분출하였다.
이를 배경으로 여러 기구들이 특별한 상호관련은 없지만 몇 가지 공통되고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설립되었다. 첫째, 전후 미국과 서구 관계에서 경제 군사협력 강화를 목적으로 미국 주도의 OECD, NATO, WEU 창설, 둘째, 스웨덴,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정치적 제약을 받거나 주권의 일부 포기를 꺼리는 중립국들을 수용하기 위한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창설, 셋째, ECSC, EURATOM, 그리고 EEC 창설이 그것이다.

EC의 기원은 1950년 5월 9일 프랑스 외무장관 슈망(Robert Schumann)이 프랑스 외무부(Quai d'Orsay)의 살롱 드 로를로쥬(Salon de l'Horloge)에서 가진 내외기자회견에서 ECSC 결성을 다음과 같이 처음 제의한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 EC 형성이전부터 전쟁방지 및 평화보존을 위한 통합 시도가 있었다. 샤를마뉴, 합스부르크 왕가, 나폴레옹, 그리고 히틀러에 의한 군사적인 시도, 칸트, 생 시몽, 로버트 오엔, 쿠덴호브-칼레르기 등 지식인들의 평화적인 시도, 그리고 브리앙 등 정치인들의 시도가 있었다.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