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2장(광복후의 정국과 분단,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업적과 유산)
- 최초 등록일
- 2014.04.04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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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광복 후의 정국과 분단
2.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업적과 유산
본문내용
1. 광복 후의 정국과 분단
미국이 일본에 원자 포탄 2개를 투하 함으로써 일본은 미국에게 완전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도 잠시 전체주의(공산주의)의 소련과 자유주의(민주주의)의 미국으로 분단하게 된다. 그럼 광복과 분단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자. 한반도 문제는 제일 늦게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소련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논의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소련의 스탈리은 함경도의 항구들을 원했고 미국보다 빨리 남진을 통해 평양을 점령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38도선을 곰동 점령하자 제안했고 소련측은 일본도 공동점령 할 생각으로 이에 동의 했다. 미국은 중앙정부를 세우고 한반도를 공동으로 관리하자고 했다. 그러나 소련은 이를 거부하고 6개월만에 북한에 정부를 세웠다. 반면 남한은 북한과는 다르게 정부를 세우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미군정부의 좌우합작 정책으로 다양한 정치 세력이 활동하게 되면서 미국에 대해 상당한 정도로 자주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5년 10월 16일 이승만이 미국에서 귀국하고 1945년 11월 23일에는 김구가 귀국함에 따라 이승만은 한국인 정부 수립을 김구는 좌우의 정치 세력을 모아 민족통일 전선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3상 회의가 열리게 된다. 이 회의에서는 미소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임시정부를 세운 다음 신탁통치를 거쳐 완전 독립을 허용한다는 모스크바 의정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남한인들은 독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만 주목하여 신탁통치를 무조건 반대했다. 그러나 좌익은 갑자기 신탁통치 지지로 노선을 갈아타게 되고 이에따라 우익의 ‘민주의원’과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가라서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