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현대적 의미]효의 필요성과 현대적 의미
- 최초 등록일
- 2003.06.04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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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본문내용-
우리 민족을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서는 “남, 서, 북극의 야만족과 달라서 천성이 매우 유순하여 일찍부터 백성들 사이에 도둑이 없어 사립문을 닫지 않고 살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산해경(山海經)』은 “동쪽 바다 밖의 동쪽 산 입구에 군자국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칼을 차고 큰 호랑이 두 마리가 늘 곁에 같이 있는데 동이족의 사람됨이 서로 양보하여 다투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이외에도 『후한서(後漢書)』「동이전(東夷傳)」에서는 우리 나라를 군자가 살고 있는 곳이라 했고, 『논어』에서 공자도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고 동경하였을 정도였다.
이런 찬사에 걸맞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예의 범절을 목숨보다 중히 여겼다. 협동 단결 정신 역시 투철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돕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민족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끝까지 항전하는 모습은 역사에 다반사로 나타나 있다. 고구려 패망 후 고구려 유민에 대한 당나라의 이민 정책, 즉 고구려 인을 중국 전체에 분산시킨 것은 고구려 인의 구국을 위한 단결력을 당나라 조정이 매우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강한 윤리 의식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단결 의식도 투철하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 나라는 이런 의식을 계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총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원인은 멀게는 100년 전 열강의 힘에 의한 피동적 개항 이후 격심한 정치적 변동과 사회 경제적 혼란에서 기인한다. 일제에 의한 강제 합방과 식민 정책으로 우리는 한민족의 정체성마저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해방 후 강대국에 의한 남․북 분단은 이데올로기의 수호만이 갈라진 남북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만들었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이러한 숨막히는 상황 하에서 한민족은 그것에 의해 살아갈 수 있는 남․북 공동의 민족적 이념 체계를 갖출 여유가 없었으며, 그에 따라 외국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일상적인 삶의 기초인 윤리마저도 혼란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목차
1. 우리의 현실
2. 효의 필요성
3. 효의 현대적 의미
본문내용
우리 민족을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서는 “남, 서, 북극의 야만족과 달라서 천성이 매우 유순하여 일찍부터 백성들 사이에 도둑이 없어 사립문을 닫지 않고 살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산해경(山海經)』은 “동쪽 바다 밖의 동쪽 산 입구에 군자국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칼을 차고 큰 호랑이 두 마리가 늘 곁에 같이 있는데 동이족의 사람됨이 서로 양보하여 다투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이외에도 『후한서(後漢書)』「동이전(東夷傳)」에서는 우리 나라를 군자가 살고 있는 곳이라 했고, 『논어』에서 공자도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고 동경하였을 정도였다.
이런 찬사에 걸맞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예의 범절을 목숨보다 중히 여겼다. 협동 단결 정신 역시 투철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돕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민족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끝까지 항전하는 모습은 역사에 다반사로 나타나 있다. 고구려 패망 후 고구려 유민에 대한 당나라의 이민 정책, 즉 고구려 인을 중국 전체에 분산시킨 것은 고구려 인의 구국을 위한 단결력을 당나라 조정이 매우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강한 윤리 의식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단결 의식도 투철하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 나라는 이런 의식을 계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총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원인은 멀게는 100년 전 열강의 힘에 의한 피동적 개항 이후 격심한 정치적 변동과 사회 경제적 혼란에서 기인한다. 일제에 의한 강제 합방과 식민 정책으로 우리는 한민족의 정체성마저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해방 후 강대국에 의한 남․북 분단은 이데올로기의 수호만이 갈라진 남북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만들었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이러한 숨막히는 상황 하에서 한민족은 그것에 의해 살아갈 수 있는 남․북 공동의 민족적 이념 체계를 갖출 여유가 없었으며, 그에 따라 외국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일상적인 삶의 기초인 윤리마저도 혼란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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