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적지 답사] 문화유적답사기-화성

등록일 2003.06.03 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2,800원

소개글

많이 노력하고 작성한 것이니 후회 하지는 않을꺼구요~
나름데로 제 생각도 많이 넣었답니다.
즐겁게 레포트 씁시다~!^^*

목차

1. 화성(수원성)을 문화 유적지로 선정한 이유

2. 화성(수원성)을 가기 전에
(1) 화성이란
(2) 화성의 축성동기
(3) 화성의 축성계획
(4) 화성의 기본 형태와 규모
(5) 화성 축조의 관계 인물

3. 화성(수원성)을 둘러보고

4. 의문점(& 해소) 및 아쉬웠던 점

5. 느낀점

본문내용

"가까운 주변에 있는 문화유적지를 둘려보고 레포트를 써오세요∼"라고 하시는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얼른 머리를 굴려보았다. 차가 있는 것도 아니니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서도 가깝고도 의미 있는 곳으로 답사를 떠나기를 말이다.
그러던 중에 화성(수원성)이 떠올랐다. 기차로 통학을 하고 있는 나는 기차 정기승차권이 수원까지로 되어 있으므로 수원에 쇼핑하러 자주 가는데 얼핏 수원성에 대해서 이야기도 들었고, '중국에는 만리장성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수원성이 있다'는 얘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원에 사는 친구와 같이 수원성을 둘러보기로 약속하고 날짜를 잡았다.

(5) 화성 축조의 관계 인물들
1) 정조(正祖) : 1752(영조 28)∼1800(정조24) 조선 제22대왕으로 재위기간은 1777∼1800이며, 이름은 산(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이다.
▶ 가계와 친정체제 구축
영조의 둘째아들인 장헌세자(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 김시묵(金時默)의 딸 효의왕후(孝懿王后)를 비(妃)로 맞았다. 1759년(영조 35)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장헌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하자 조세(早世)한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孝章世子:뒤에 眞宗이 됨.)의 후사(後嗣)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5년에 대리청정을 하다가 다음해 영조가 죽자 25세로 왕위에 올랐는데, 생부인 장헌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듯이, 정조 또한 세손으로 갖은 위험 속에서 홍국영(洪國榮) 등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이겨냈다. 그리고 ‘개유와(皆有窩)’라는 도서실을 마련하여 청나라의 건륭문화(乾隆文化)에 마음을 기울이며 학문의 연마에 힘썼으며 즉위하자 곧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하여 문화정치를 표방했다. 세도정치를 자행하던 세력을 축출함으로써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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