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진시황

등록일 2003.06.03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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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진시황제는 재위동안에 정치, 경제 산업등에 힘써 국가를 부강하게 하여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이다. 그의 찬란한 업적의 전개는 그의 출생부터 시작되는듯 하여 우리에게 자못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기원전 260년 한(韓)나라(지금의 하남성)의 적양성에 여불위(呂不偉)라는 상인이 있었다. 그는 오랜동안 여러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장사를 하며 얻은 감식안으로 상품의 가치를 그 시대적 상황과 상품의 가치를 꽤뚤어 볼수 있는 상인 중의 상인이었다고 한다..그는 진나라의 태자 안국군(安國君 : 나중에 효문왕이 됨)의 아들 자초(子楚)가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限鄲)에 인질로 잡혀 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자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접근하여 교분을 맺고, 조나라의 인사들과 폭넓은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해준다. 그러면서도 자초를 이용하여 정치적으로 출세할 목적으로 안국군의 부인들 가운데 가장 총애하는 화양부인에게 자식이 없음을 간파한 그는 화양부인에게 자초의 이름으로 진기한 선물공세를 던진다. 이로 인하여 진나라에서 잊혀져 가던 자초의 이름이 화양부인의 기억에 되살아나고 주목을 받게 되었다. 여불위는 진나라 궁정의 여론을 자초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 궁정대신들을 매수한다. 이화 같은 분위기 조성으로 자초는 화양부인의 적자(嫡子)가 되고 이미 왕위를 이어 받게된 장남 자계(子系)를 대신해서 자초가 후계자가 된다. 한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는 자초를 진나라의 후계자로 만든 여불위는 그의 애첩 주희까지 주어 더욱 환심을 샀다. 자초가 주희와 함께 진나라로 돌아간 후 아들을 낳았으니 이 아이는 여불위가 주희를 첩으로 삼았을때 이미 잉태된 씨앗으로 그가 훗날 진시황제로 된 것이다. 자초는 안국군(효문왕)의 뒤를 이어 장양왕(將襄王)이 되고 여불위는 승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3년후 자초는 병으로 죽고 기원전 246년에 열세살인 어린나이에 영정(瀛正)이 왕위에 오르자 여불위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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