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문화교류사] 발해와 일본의 외교관계(정치,교여등등)

등록일 2003.05.29 | 최종수정일 2014.10.18 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현존하고 있는 자료가 별로 없는 발해와 일본의 외교
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레포트 입니다.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서론 : 만주지방을 마지막으로 지배하였던 해동성국 발해에 대한 조사목적

본론 : 1.발해의 경제생활
2.발해와 일본의 교역에 관하여(물품 시기 사료문헌)
3.발해와 일본의 교역의 의의

결론 :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왜곡된 발해사를 재 정립하고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

본문내용

1. 서론

우리 역사상 만주를 최후로 지배했고 가장 거대한 영토를 가졌던 왕조 발해.
우리는 근래 들어서 다시 부각되고 있는 발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그러면 발해와 일본과의 관계 중 주요한 문제인 두 나라간의 교역에 관하여서 이 교역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또 그것이 가지는 여러 가지 의미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2. 본론

(1) 발해의 경제생활

발해 사회는 9세기에 이르러 농업, 어업, 수공업 등 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생산 활동에서 기본이 된 것은 역시 농업이었는데, 기후가 찬 관계로 논농사보다는 밭농사를 주로 하여 콩, 조 같은 곡물이 더 많이 재배되었다. 그러나 철제 농기구가 널리 사용되고 수리 시설이 확충되며 서 점차로 재배하는 곡물의 수가 많아졌고 벼농사도 이루어졌다. 발해에서는 수공업도 발전하였다. 그 중에서도 제철업이 발달하여 금속가공업이 성행하였고, 방직업이나 목재, 피혁의 가공업도 발전하였다. 그밖에, 목축이나 수렵 등도 발해인의 경제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특히 솔빈부에서는 명마가 많이 생산되었으며, 옷감으로는 짐승의 털가죽이나 베, 비단이 사용되었다. 후에 이런 모피등이 일본과의 교역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물품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된다. 또 어업이 발달하였는데 고기잡이 도구가 개량되어 그물을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먼바다에 나가서 고래를 잡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발해국사> 정음사 "김정신, 유재신" 1998년
http://www.koguryo.or.kr/ <고구려 연구회>
<발해의 기원과 문화> 예문 출판사 "최무장" 1988년
<발해의 수수께끼> 교보문고 "최봉렬"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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