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를 읽고

등록일 2003.05.29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백범일지의 내용 요약
2.백범일지를 읽고 느낀 점

본문내용

백범일지는 김구선생의 어릴적 이야기와 옥중생활, 그리고 상해에서의 활동 등을 기록한 것이다. 그의 책 서문에 언제 죽을지 모를 목숨이기에 이 글을 남기며 또한 그의 아이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기록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구의 본명은 창수이며 황해도 해주 출신이다. 15세 때 한학자 정문재에게서 한학을 배웠고 1893년 동학에 입교하여 접주가 되고 이듬해 팔봉도소접주에 임명되어 해주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게 쫓겨 1895년 만주로 피신하여 김이언의 의병단에 가입하였다. 이듬해 귀국하여 일본인에게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고종의 특사로 감형되었다. 복역 중 1898년 탈옥하여 공주 마곡사의 승녀가 되었다가 이듬해 환속하고 1903년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9년 황해도 안악의 양산학교 교사로 있다가 이듬해 신민회에 참가하고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감형으로 1911년 출옥하여 김홍량의 동산평 농장 농감이 되어 농촌을 계몽하였다. 3·1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경무국장 · 내무총장 · 국무령을 역임하면서 1928년 이시영 · 이동녕 등과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총재가 되었다. 이로부터 항일무력활동을 시작하였다. 결사단체인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1932년 일본왕 사쿠라다몬 저격사건과 상하이 홍구공원 일본왕 생일축하식장의 폭탄투척사건 등 이봉창 ·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휘하였다. 1933년 난징에서 장제스를 만나 한국인 무관학교 설치와 대일본전투방책을 협의하고 1935년 한국국민당을 조직하였으며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기 충칭으로 옮길 때 이를 통솔하였고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를 설치하여 사령관에 지청천을 임명하고 199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되었다. 1945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대일선전포고를 하는 한편 광복군 낙하산부대를 편성하여 분국 상륙훈련을 실시하다가 8 · 15광복으로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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