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링컨의 노예관』과 함께 보는 노예해방운동의 역사

등록일 2003.05.28 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400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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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 공방 결국 내전으로
계산된 '노예해방 선언' 효과 만점
남북전쟁 종결
▶【언론인 발언대】(한 북부의 흑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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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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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농담을 가장 잘하고 언변이 좋다는 평이다. 노예제를 반대하지만 남부의 여론을 의식, "노예를 해방 않고 연방을 수호할 수 있다면 그리 하겠으며, 노예를 해방해야 연방을 수호할 수 있다면 그러겠다"고 대답할 만큼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 1858년의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둘로 나뉘어 서로 적대하는 집안은 영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분열된 집' 연설로 일약 대통령 후보가 됐다. 대통령 선거 당시, "수염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한 소녀의 편지대로 수염을 길러 이미지 쇄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그러나 링컨은 워싱턴의 포드극장 2층 특실에서 부인과 함께 희극을 관람하던 중 1m 뒤에서 존 윌키스 부스(저격범이 쏜 총에 후두부를 맞고 쓰러졌다. 그리고 다음날인 15일 아침에 사망했다. 1809년 켄터키 출신으로 미망인 메리 토드와의 사이에 두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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