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령] 송경령의 항일운동

등록일 2003.05.25 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3,000원

목차

Ⅰ. 머리말

Ⅱ. 만주,상해사변이후의 항일언론활동
1. 송경령의 민족사상의 기틀
2. 재야 항일운동의 조직
3. 제 2 차 국공합작과 송경령

Ⅲ. 중,일 전쟁시기의 항일 지원 활동
1. 국공의 충돌과 송경령의 통일전선 유지 노력
2. 항일 애국사상의 귀결점 : 중공정권에의 합류

Ⅳ. 맺음말

본문내용

3. 제 2 차 국공합작과 송경령

중국공산당은 일본침략 이래 무장저항을 주장해왔다. 또한 홍군(중국공산당)은 진실로 일본과 싸우려한다면 어떤 군대와도 휴전하고 통일전선을 결성하겠다고 제안했었는데 계속 무시당해왔었다. 그러나 결국 통일전선의 필요성은 전 중국이 느끼게 되었고, 홍군은 이에 통일전선을 위한 자신들의 성숙이 필요했다. 따라서 그들은 1934~1935년에 걸쳐 대장정을 단행했고 이를 통해 다른 어떤 군대보다도 우수하게 되었다. 하지만 연안에 도착했을 때의 홍군의 총 병력은 전성기의 1/3인 8만 명에 불과하였고, 국민당 군은 10배가 넘었다. 당시 상황으로 홍군은 국민당군의 압력으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송경령은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국공간의 접촉을 돕기 위해 국공간의 연결을 최초로 시도했다. 1936년 1월 항일통일전선을 전보다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던 중공지도자에게, 이것을 기초로 하여 직접 협의하고 싶다는 명확한 국민당의 제안에 관한 최초의 정보를 중간에서 전했던 것이다. 우선 모택동과 주은래(周恩來)에게 보낼 서한을 동건오(董健吾)에게 맡긴 뒤 송자문(宋子文)을 통해 국민당 중앙에 보낸 것이다.
이로써 송경령은 10년간 단절되었던 국공 양당의 교섭에 중요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1936년 송경령은 모택동의 내전을 정지하고 일치항일하도록 국민당에게 요청해주며 반한년(潘漢年)으로 하여금 국민당 중추인물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는 편지를 받았다. 모택동은 친서에서 그녀의 '혁명구국의 언론행동'에 대하여 '끝없는 존경'을 표시했으며 송경령이 국민당 중앙집행위원의 자격을 이용하여 새로운 항일민족통일 전선의 촉진을 위해 기여해줄 것과 이를 위해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일에 힘써주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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