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한백겸

등록일 2003.05.25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생애와 학문경향
2. 『동국지리지』의 편찬과 내용
3. 역사인식
4. 사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1. 생애와 학문경향
17세기에는 안으로 분열된 사회를 다시 통합하고, 밖으로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처할 수 있도록 국가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되었다. 임진왜란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선의 노력 결과, 사회경제 정책에 대한 논의와 시행, 예제(禮制)의 회복과 교화(敎化)를 위한 노력, 다양한 사상적 요소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역사학에도 영향을 끼쳐, 이전의 서술체제와는 다른 역사지리 중심의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고,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한백겸이었다.

자는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菴), 본관은 청주로 서울서 태어났다. 선조12년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부상(父喪)과 조모상(祖母喪)을 당한 후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1586년 중부참봉(中部參奉)에 임명되어 관직생활을 시작하였으나 기축옥사때 연루되어 유배를 갔다가, 왜란이 일어나자 풀려났다. 이후 호조좌랑, 안악현감, 영월군수, 청주 목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1607년에는 평양에서 현지 답사를 한 후 『기전유제설(箕田遺制說)』과 『기전도(箕田圖)』를 저술하였다. 선조가 죽은 후 광해군대 대표적인 예학자로 추천되어, 빈전(殯殿)에서의 일을 맡아 처리하며, 공물의 폐단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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