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연방해체와 고르바초프

등록일 2003.05.24 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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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들어가며

Ⅱ.개혁파와의 대립·갈등
1. 개혁파의 등장
2. 샤탈린안 거부 -고르바초프의 보수 회귀
3. 신 연방조약
4. 고르바초프와 옐친

Ⅲ.인민으로부터의 소외
1. 소련인민의 모습, 특성
2. 페레스트로이카와 인민
3. 인민으로부터의 소외

Ⅳ.보수파와의 불협화 과정과 쿠데타(1989년∼1991년까지)
1. 보수와의 불협화 과정
2. 쿠데타의 발발과 의의

Ⅴ.나오며 고르바초프의 재조명

본문내용

소련방의 해체로 70여 년 간 실험을 거쳤던 현실 사회주의는 일단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왜 소련이라는 거대한 체제가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무너졌는가에 대해선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소련해체와 고르바초프'라는 과제를 놓고 조사를 시작하려니 그 범위가 너무나 광범위하고 막연하였다. 일단 소련해체의 시점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였다. 홉스봄은 애초의 러시아 혁명은 서유럽의 발달된 자본주의 국가의 혁명과 세계혁명으로 뒷받침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세계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은 러시아 혁명은 초기부터 실패의 운명을 안고 있었으며, 따라서 소련의 해체는 소련의 성립과 함께 이미 진행되기 시작하였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 스탈린의 대숙청과 공포정치로 혁명적 볼셰비키가 제거되고 구 차르체제의 관료들이 재등장하여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전체주의 체제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소련은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소련방 해체의 시점이 과연 언제부터인가를 논하는 것은 너무도 난해하고 힘겨운 문제이다. 다행히도 '연방해체와 고르바초프'라는 주제를 조사함에 있어서 우리는 최대한 범위를 좁혀서 접근하기로 하였다. 페레스트로이카가 그 성격상 반체제적이고 반 소비에트적이기 때문에 이미 고르바초프의 집권 및 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과 더불어 소련은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어디까지나 소연방의 유지와 체제내의 개혁을 추구했던 레닌주의자였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이 결코 연방해체 및 시장자본주의의 도입을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우리는 고르바초프가 개혁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어쩔 수 없이 연방해체의 결과로 이끌려가는 명확한 시점인 1990년 말부터 1991년 말까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1990년 말은 고르바초프가 샤탈린 안을 거부함으로써 개혁파와 되돌릴 수 없는 대립으로 치닫고, 보수회귀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시점이다. 이 시기 고르바초프의 보수회귀가 결과적으로 개혁파와 보수파 모두에게서 소외당하고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원세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연방해체라는 비극으로 끝맺게 되는 결정적인 분기점인 것이다.
'연방해체와 고르바초프'라는 과제를 조사함에 있어 우리는 고르바초프의 민족·외교·정치·경제·사회정책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연구주제들과의 중복을 피하고, 또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떤 갈등을 겪었으며, 어떤 생각과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어떻게 연방해체라는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선 권력투쟁이라는 한정된 범위로 우리의 관심을 국한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서는 주로 고르바초프와 개혁파/보수파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였고, 어떤 갈등과 대립 속에서 연방해체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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