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송영과 호신술

등록일 2003.05.24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서론

Ⅱ.본론
1. KAPF의 노선과 송영의 선택
2. 풍자극과 민족극
3. 호신술

Ⅲ. 마지막으로


본문내용

연극사에서 1920년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른바 '신극운동'이 시작됨으로써 상업극 일변도의 연극계에 새로운 조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현철.김우진.홍해성 등이 주축이 된 신극운동은 서구의 자연주의 연극을 전범으로 삼고 있었다. KAPF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상적인 기반의 차이를 제외하면 연극운동의 모범을 서구의 근대극운동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1920년대 송영의 연극이 서구의 자연주의극의 부류에 속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극적 기반은 동일하더라도 송영의 희곡이 김우진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지니게 된 것은 바로 KAPF의 노선 때문이다.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하여 문화를 가지고 싸운다"고 했던 그로서는 당대의 절대적 사회문제였던 '노동자 문제'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그러한 문제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극형식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을 것이다. 조직을 택한 그는 기꺼이 '투쟁예술로서의 무기'가 되어야 했으므로, 김우진처럼 다양한 소재와 극형식상의 실험을 해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송영이 노동자의 궁핍한 삶들을 사실적으로 다루면서, 다툼과 화해의 방식을 통하여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려 한 것은 그가 도달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송영의 작품은 공연될 수 없었다. 일제의 검열이 존재하는 한 사실적으로 노동자들의 궁핍을 드러내면서, 공공연하게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선동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국 KAPF계열 연극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그러한 위기를 탈피하려는 시도가 KAPF에서 논의가 된다. [카프]의 공식적 입장은 '합법적 극장공연'을 통한 프로극의 활성화였다. KAPF의 이러한 시도는 검열을 인정하고 공연하겠다는 것이다.
1930년대 접어들면서 송영이 풍자극으로 옮겨간 것은 검열을 통한 합법적 공연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KAPF의 노선을 충실하게 담아내려는 모색의 결과였다. 그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KAPF계열 창작극으로서는 드물게도 공연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체 면회를 거절하라>가 [중전북악회](1933)에 의해, <호신술>이 [메가폰](1932)에서, 그리고 <신임이사장>이 [신건설](1934)에서 공연됨으로서 합법적 공연을 통해 KAPF의 이념을 전파하겠다는 목적이 일단 이루어졌다. 송영의 작품이 자주 공연될 수 있었던 것은 30년대에 발표된 그의 작품이 20년대와는 달리, 현실 문제에 대해 우회적인 방식을 도입해서 검열의 벽을 넘어선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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