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장정
- 최초 등록일
- 2014.01.28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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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대장정(大長征)
2. 국민감정과 국민당 이데올로기
3. 시안의 위기
4. 중국의 빈곤
본문내용
장시 소비에트 지역에 대한 장제스(蔣介石)의 정책은 1934년 중반에 이르자 공산당 군대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었다. 공산당은 소련과의 연결이 끊긴 상태였다. 이에 소비에트를 포기하고 10월 16일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지휘에 따라 철수가 용이한 서남쪽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이로서 잔류인원을 제외한 공산당 8만 명의 ‘대장정(大長征)’이 시작되었다.
장정의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그들 내부의 문제로 인해 속도가 느려 고초를 겪었다. 이는 샹강(湘江)에서의 막대한 피해를 불렀다. 국민당은 장시 주력군과 후난의 다른 공산당 군대가 합류하는 것은 막았지만, 이들이 구이저우(貴州)에 들어가는 것은 막지 못했다. 구이저우에서 정비를 마치고 우강(烏江)의 방어선을 돌파한 공산당은 1935년 1월 7일 마침내 쭌이(遵義)에 입성했다.
1935년 1월 15일~18일에 열린 쭌이회의에서 지도부는 장시에서 당의 실패원인을 검토하고 그들이 직면한 정치적 선택을 조망(眺望)했다. 회의가 끝난 후 결의안에 따르면 ‘기동전’을 벌이는 대신에 ‘순수한 방어 일변도’의 전략을 따랐고, 1934년 초반 “소비에트에서 적들과 무모하고 목표 없는 전쟁”으로 공산당 힘을 소진시켰으며, “소비에트 철수는 공포에 질린 도망이나 난장판 같은 이사 작전이 되었다”고 비판당했다. 이 결의안은 이전부터 기동전을 주장한 마오쩌둥(毛澤東)의 견해를 대변하고 그의 공산당 장악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으며, 당 지도부의 세력교체를 통해 마오쩌둥은 당의 핵심인물로 떠오른다.
대장전군은 5월 초 쓰촨과 시캉 성으로 북진을 감행하였고 국민당의 공격에도 진사(金沙)강 ? 다두허(大渡河)강 ? 다쉐(大雪)산맥을 지나 마침내 1935년 6월 12일 해발 4,800m에 위치한 쓰촨(四川) 북부의 머우궁(懋功)에 도착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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