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정의 신분투쟁
- 최초 등록일
- 2014.01.26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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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공화정 초기는 귀족정치로서 귀족들의 대지주로서(고위정무관, 신관 직을 독점), 기병으로서 전투의 주력 있었고 원로원 의원을 독점한다 당시 평민의 경제력이 미약했고 정치권력에서 소외되어서면 법적으로 귀족과 통혼이 불가하였다. 당시 평민이 귀족이 될 수 있는 길이 막혀있었다 그러나 전술의 변화하면서 귀족기병대에게만 의존하던 전술은 점차 줄어들고 중무장 보병밀집대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정복지의 귀족들이 로마에 편입된 후에는 평민이 되었고, 이들이 일반평민들에게 지도력을 제공하였다. 그렇지만 평민들은 정치참여를 배제당했고, 대부분이 소농민인 평민은 경제적 압박으로 빚을 지고 노예로 팔려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신분 투쟁이 일어나다. 먼저 성산 사건 (BC494년)이 발생한다. 평민들은 독자적인 군대조직을 만들고 로마공동체에서 이탈하여 로마 동쪽의 성산이라 불리는 언덕에 진영을 설치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 함 이에 귀족 측 대표 아그리파를 사자로 보낸 : 위(귀족)와 손발(평민)의 관계를 비유로 들면서 평민들을 설득하고 이로 인해 귀족들이 평민회와 2명의 호민관 설치에 동의한다
다음으로 BC 450년에 12표법 제정 최초의 성문법으로 귀족의 자의적 법운영 배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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