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 동양의 잔다르크 유관순

등록일 2003.05.22 MS 워드 (doc)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유관순의 탄생
2. 유관순의 성장배경
3. 유관순의 활동
4. 유관순의 체포와 순국
5. 유관순 관련 유적과 자료들

본문내용

유관순이 태어난 천안은 우리 민족의 독립사에서 볼 때 주요한 역할을 차지한 독립운동의 중심지로서 현재 독립기념관과 그 밖에 많은 유적지와 기념비들이 남아있습니다.

1. 유관순의 탄생
3.1운동의 순국열사로서 ‘한국의 잔다르크’, ’3.1운동의 꽃’이라 불리우는 유관순은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재 병천면 용두리)의 작은 마을에서 역시 독립운동가중 한 사람인 유중권씨의 삼남이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2. 유관순의 성장배경
유중권의 집안은 기독교를 일찍 받아들여 개화한 집안으로 마을에서도 존경과 칭찬을 받는 고흥 유씨의 가문이었습니다. 관순은 이러한 환경속에서 교육을 받았고, 자랐으며 성격은 적극적이고 감수성이 몹시 예민하였다. 타인에 대해서도 정열적이었고 한번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굽히지 않고 관철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관순이 7살 되던 해에 우리나라는 일제에 병합되어 국권이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이에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은 어떻게 하면 국권을 하루 속히 회복할까를 생각했고, 그 길을 신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가산을 정리하고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고마다에게 3백냥의 빚을 내어 흥호학교를 세웠다. 이는 현실적인 교육을 통해서 무지한 민중을 깨우고 똔한 기독교 정신을 통하여 자각의 정신을 일깨워 주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고마다에게 빚 독촉은 물론 행패까지 받아야 했고 고마다는 유씨의 머리를 우물 속에 쳐넣는 행동까지 하였다. 어린 관순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자랐고 배일의 사상을 불태우고 있었으며 부친으로부터 기울어진 민족의 국권회복을 위하여 전 혼과 마음을 불태울 이념과 정신도 공급 받았다. 틈만 있으면 아버지 유씨는 큰아들 관우와 관순을 위해 기도하며 가르쳤다. 항상 민족의 일꾼이 되기를 강조하였고 이에 따라 어린 마음 속에서지만 민족 독립 정신은 서서히 불붙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기가 다분하였던 유관순은 공주의 영명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선교사 부인인 Ms. Alise H. Sharp의 배려로 2년후 이화학당의 보통과 3학년에 입학하였다. 이화학당에는 관순의 사촌 언니 애더가 있었고. 이화에 들어온 관순은 새로운 지식들을 습득하였고 종교적신념과 함께 국권회복에 대한 생각을 키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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