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파 후사가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4.01.22
- 최종 저작일
-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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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북학파 후사가란
2. 인물연구
1) 박제가
2) 유득공
3) 이덕무
4) 이서구
3. 한객건연집에 대하여
본문내용
1. 북학파 후사가란
박지원을 따르며 배운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이서구(李書九) 이 네 사람은 특히 시로써 나란히 이름이 났다. 유득공의 숙부인 유련이 청나라에 갔을 때 아직 젊은 네 사람의 작품을 모아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이라는 시집을 편찬하고, 청나라 문인들이 대단한 찬사를 늘어놓는 서문을 얹어 그곳에서 간행했다. 서문에 있는 말에 근거를 두고 네 사람을 ‘사가`(四家)라고 하는 관례가 생겼으며, 책 이름을 <사가시>(四家詩)라고도 한다. <사가시>는 국내에서도 널리 읽혔고, 후대에는 주석까지 달린 <전주사가시>(箋注四家詩)로 간행되기도 했다. 이 네 사람은 중국의 전례를 되풀이하는 데서 벗어나 한시를 우리대로의 현실감각과 생활감정에 맞는 시로 바꾸어놓으려 했는데, 그 노선이 중국에서의 평가를 앞세워 국내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중 략>
비록 그의 역사관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지만, 처음에 남방 중심의 역사 인식에서 출발하여 점차로 북방 중심으로 변모해갔고, 그 결과 《발해고》 《사군지》를 저술하여 한국사학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는 《발해고》를 통하여 발해의 옛 땅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하였고, 《사군지》에서는 북방 역사의 연원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특히 《발해고》 머리말에서 고려가 발해 역사까지 포함된 ‘남북국사(南北國史)’를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비판한 뒤에, 발해를 세운 대씨(大氏)가 고구려인이었고 발해의 땅도 고구려 땅이었다고 하여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주장함으로써 ‘남북국시대론’의 효시를 이루었다. 이상과 같은 그의 역사 인식은 나중에 정약용(丁若鏞) ·한치윤(韓致奫) 등의 연구 업적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14(근대사상의 맹아)』 탐구당 1981
역사학회 『실학연구입문』 일조각 1997
正祖實錄, 靑莊館全書, 燕巖集, 歸思堂集, 李德懋의 實學思想(李成茂, 鄕土서울 31, 1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