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 임나일본부설
- 최초 등록일
- 2003.05.21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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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I. '임나'라는 이름의 기원
II. 임나의 위치
Ⅲ. 임나일본부의 존속시기
Ⅳ. 임나일본부의 조직
Ⅴ. 임나일본부설의 성격
Ⅵ. 임나일본부에 관한 한·일 연구상황
결론
본문내용
과거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미래를 살아나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된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기 민족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지고, 민족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기도 하니, 이는 식민사관의 폐해라고 할 것이다. 식민사관 중에서도 보통의 일반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당파성론과 임나일본부설이 아닌가 한다. 당파성론이라는 것은 본래 우리 민족 내부의 일이고 조선시대의 문화성격을 올바로 인식하면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고 하겠으나, 임나일본부설은 증거가 별로 없는 고대 가야지역에 대한 일이면서 한국과 일본 사이의 민족 감정까지 겹쳐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이다.
특히 임나일본부 문제는 가야사의 재정립을 위해서 또는 고대한일관계사의 해명을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김태식, 역사 비평의 "광개토왕릉과 임나일본부설", 인터넷 속에서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는 오직『일본서기』에만 5회 나오고 '일본부'라는 용어도 앞에 예를 포함하여 동서에만 35회 나오는데, 그것도 그 안에 인용된『백제본기』와 관련하여 흠명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일본부'라는 용어는 『일본서기』에 35 회 나타나며, 그 중에서 웅략기 8년(464) 2월 조의 1 例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흠명기 2 년(541) 4 월 조부터 13년 (552) 5월 조의 사이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임나일본부'라고 되어 있는 것은 흠명기 2년 4월 조에 2회, 7월 조에 2회, 5년(544) 11월 조에 1 회의 총 5 예이다.
참고 자료
『가야연맹사』, 김태식, 일조각, 1993
역사비평의 "광개토왕릉과 임나일본부설", 김태식
『시민을 위한 가야사』, 집문당, 1996. 부산·경남 역사연구소 엮음
『가야사』, 윤석효, 민족문화사, 1990
『초기조일관계연구』, 사회과학원출판사, 1969
『고대조일관계사』, 조선연구회, 1988
『고대한일 관계사』,,한마당
『임나와 일본』, 김정학, 1977
『귀족국가의 형성과 발전』, 이기동, 1982
『말송보화』, 가야사 p. 69
『삼국사기』권 4 신 본기 4 진흥왕 23년 9 월
『서부일본 기비지방의 조선계통소국들에 대하여』
⇒『역사과학논문집』조희승, 1985 11,
『삼한 삼국의 일본 열도 내 분국들에 대하여』, 김석형, 1963
『임나일본부와 왜』동출판,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