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리더쉽
- 최초 등록일
- 2014.01.09
- 최종 저작일
- 2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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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나치즘의 형성 배경
2. 히틀러, 그는 누구인가?
3. 히틀러의 리더십
1) 탐색부문
2) 상황이론으로 본 히틀러의 리더십
3) 행동이론으로 본 히틀러의 리더십
4. 결론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나치즘의 형성 배경
(1) 나치즘의 형성
나치즘이란 히틀러를 당수로 하여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정권을 장악한 독일의 파시스트 당‘나치스’의 정치사상 및 체제를 말한다. 나치스란 원래 정적들이 만들어 낸, 얕잡아 부른 명칭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이 말이 전 세계의 통칭이 되었다.
나치 리더십은 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6년여에 걸친 대전의 전 기간에 걸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나치 사상은 향후 세계 강대국과의 대결을 위해 독일 영토 내에서의 새로운 사회 질서 구축을 목표로 하였다. 즉 나치 이념은 인종적, 생물학적 특징에 상당한 주안점을 두면서 오직 타 인종이나 국가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위대한 독일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쇼비니즘(광신적 애국주의)에 기초한 사상이었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가치를 배격하였으며 대신에 새로운 권위주의 엘리트들에 의한 일사불란한 지배체제를 열렬히 옹호하였다. 이들의 사상은 당시 유럽 대륙 전체에 퍼진 문화적 비관주의(부르주아라 불리는 중상계급에 의해 지배되는 유럽대륙의 운명은 암울하며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에 그 기초를 두고 있었다.
<중 략>
히틀러가 유태인을 박해한 또 다른 동기로서 그의 유태인 선조설이 제시되고 있다. 유태인 선조설의 지위는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학자들은 이것이 히틀러의 반유태주의를 강화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유태인 선조설은 히틀러를 정치적, 심리적 측면에서 위협했다. 우선 정치적으로 그는 전 생애에 걸쳐 반유태주의 원칙을 일관해 왔다. 그런데 만약 히틀러의 선조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나치당 지도자로서 그의 정치적 위광은 종말을 고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데일리 미러’의 1933년 10월 14일 자에 게재된 히틀러의 유태인 조부에 관한 기사는 히틀러의 위기의식을 첨예화시켰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히틀러는 유태인 선조설을 반증하기 위해 게슈타포(나치의 비밀경찰)까지 동원했지만 그에게 유리한 아무런 근거도 찾아낼 수 없었다. 심리적으로도 유태인 선조설은 히틀러를 자극했다.
참고 자료
히틀러의 뜻대로『히틀러의 조력자들』-귀도 크놉 지음, 신철식 옮김 (울력출판사)
히틀러는 왜 세계정복에 실패했는가 -베빈 알렉산더, 함규진 옮김 (홍익출판사)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리처드 오비리, 류한수 옮김 (지식의 풍경)
나치의 자식들 -노르베르트 레버르트, 슈테판 레버르트 지음- 이열희 옮김 (사람과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