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위정척사운동
- 최초 등록일
- 2003.05.20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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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序論
Ⅱ. 本論
1. 위정척사론의 대두
2. 위정척사 운동의 성격
3. 위정척사 운동의 전개
4. 1990년 이전의 연구상황
5. 최근의 연구상황
6. 위정척사 운동의 의의
7. 위정척사 운동의 한계
Ⅲ. 결론
본문내용
Ⅰ. 序論
衛正斥邪운동은 正學(孔, 孟, 程, 朱)의 도통을 지키고 邪學(佛, 道, 陸王學, 西學)을 배척하는 유교의 闢異端 이념을 대변하는 사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학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대개 병인양요(1866) 이후에 나타나게 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항로, 기정진, 김평묵, 최익현, 유인석 등이 있다. 위정척사론이 대두되게 된 배경인 서양으로부터의 충격은 역사적으로 두 단계로 나타나고 있다. 그 초기적 형태로서 천주교와 같은 문화적인 형태와 후기적 형태로서 통상 요구와 같은 구체적인 정치, 경제적 형태가 그것이다. 서양의 충격이 주로 천주교와 같은 문화적인 형태이었을 때,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위정척사 사상은 문화적으로 자기 질서를 강조하고 보존하려는 형태로 나타났다. 서양의 충격이 통상의 강요나 이것을 관철하기 위한 물리적인 공격으로 나타났을 때, 한말의 위정척사 사상은 보다 직접적으로 한국이란 사회 자체를 보존하기 위한 정치적, 민족적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에 일본으로부터의 충격이 가세하면서 한말의 위정척사 사상은 새로운 국교를 요구하는 일본의 강요에 대해 하나의 척화 의식으로 나타났고, 일본이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나왔을 때부터는 민족적으로 저항하는 의병과 같은 구체적인 형태로 동태화 되었다. 이렇게 서학의 충격에 대한 반응으로서 나타난 위정척사 사상은 서학에 대한 단순한 이념적 투쟁의 의미에 그치지 않고 구미 자본주의 열강에 대한 반침략적 대결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또한 이러한 위정척사의 의식 성향은 당시 도학의 사림조직에 널리 공유되어 있었다. 그들은 성리학, 의리론 등에 있어 유파별로 입장의 차이가 있었지만 대외적 도전에 직면하여 이에 대응하는 행동 양식에 있어서는 殉義精神의 발휘라고 하는 점에서 일정한 공동성을 지니고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