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 한제국 통치제도
- 최초 등록일
- 2003.05.20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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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유방과 군국제도
2)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
3)한의 군사제도
4)황제와 민작제도
목차
1)유방과 군국제도
2)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
3)한의 군사제도
4)황제와 민작제도
본문내용
1. 유방과 군국제도
항우를 조강에서 패사시키고 다시 중국을 통일한 유방은 제장들의 추대에 의하여 정도부근의 범수에서 황제에 즉위하였다. 황제로 등극한 유방의 급선무는 왕조의 기반이 되는 통치제도의 확립과 유방을 도와서 항우를 격퇴시키는데 공이 컸던 제장들에 대한 포상, 그리고 장기간의 한·초전으로 인해 극도로 피폐되었던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선 유방은 장안을 수도로 정하였다. 다음 문제는 자신과 기병하여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항우와 악전고투하여 천하통일사업을 완수한 제장들에 대한 포상문제였다. 유방은 논공행상을 통하여 이들 공신들을 열후·제후왕에 봉하였다. 『한서』의 공신연표에 의하면 이 때 열후에 봉해진 사람들이 143인 이었다. 열후는 이십등작제의 최상위로 이들에게는 봉읍이 주어졌으며, 그 작위가 세습되었고, 봉읍에서 징수되는 조세는 모두 열후의 수입으로 되었다. 제후왕은 근친자와 특별한 공신에게 주어졌는데 이성제후국은 한왕 신·초왕 한신·회남왕 영포·양왕 팽월·연왕 장·조왕 장이·장사왕 오예의 7국이었다. 이러한 제후왕의 분봉은 이 때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고 한·초전 당시에 제장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기 위해서 이미 실시되고 있었다. 이들 제후왕은 대체로 수개의 군 또는 수십개의 현을 소유하고 있었다. 또 이들 제후국은 각기 국으로 불리었으며, 국내의 통치는 모두 제후왕이 장악하고 있었고, 중앙정부의 통치조직에 비해 규모는 작았으나 독립된 관료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관리임명에 있어서 상국(승상)만 중앙정부에서 임명하고, 그 외의 관료는 모두 제후왕이 독자적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제후왕은 국내의 징세와 부역동원을 포함한 모든 재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런 점에서 제후의 봉국은 주대의 제후국과 같은 독립적 성격이 강하였고, 이같은 현상은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이탈하여 독립화되는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