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국사 용어 정리(삼국시대)
- 최초 등록일
- 2003.05.19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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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통일 신라의 고분 양식 : 통일 전의 고분 양식은 돌무지 덧널 무덤, 돌방 무덤 등이 있는데 규모가 큰 것은 대개 돌무지 덧널 무덤이다. 통일기에 와서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법이 유행하였다. 예컨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도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하여 장사를 지냈다. 그리고 고분 양식도 돌무지 덧널 무덤에서 굴식 돌방 무덤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경주의 괘릉, 김유신묘, 성덕왕릉에서 보듯이 무덤의 봉토 주위를 호석(=둘레돌)으로 두르듯 그 호석에 쥐, 소, 범 등 12지 신상을 조각하는 새로운 양식이 생겼다.
■ 발해 고분의 특징 : 발해의 돌방 무덤은 고구려 후기 굴식 돌방 무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 발해 문화의 고구려적 성격 : 발해 초기부터 드러난 한문 교양이나 그 문화는 고구려 문화로부터 전수받은 것으로 볼 수 있으며, 5경 제도 역시 고구려의 5부제에 기초한 것이다. 그리고 발해의 불상, 기와, 고분의 건축 양식 등도 고구려 문화의 계승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발해의 미술은 패기에 넘치던 고구려 미술이 계승되었으나, 어느 정도 부드러워지면서 웅장하고 건실한 기풍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 이불 병좌상 : 발해의 불상인 이불 병좌상은 길림성 혼춘면 팔연성 부근에서 다수 출토된 것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이 불상은 종래 6조 양식을 따른 발해 초기의 불상으로 소개되었다. 불상의 양식, 얼굴 모습, 이불 병좌상 신앙 등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6세기 후기에서 7세기 초에 고구려 국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 후기의 불상이 발해 절터 근처에서 발견되는 것은 고구려 시대의 유적에서 가져온 것이거나 동경 용원부가 건립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고구려의 절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측된다. 불상의 높이는 29~30㎝ 내외로 현재 14개 정도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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