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三國史節要》의 편찬
1. 편찬자와 편찬 배경
2. 편찬 목적
3. 진행 과정
4. 내용 구성 방식 및 특징
Ⅲ. 맺음말
본문내용
조선전기는 국가가 기틀을 잡아가고, 사회를 안정화해나가던 시기였다. 그래서 주로 편찬 사업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고, 역사서의 수찬(修撰) 역시 이러한 경향 속에서 이루어졌다. 저술자인 학자들은 개인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을 하는 것보다 왕명을 받드는 관료로서 역사를 서술하였고, 대부분의 관찬사서(官撰史書)들은 이러한 국가의 목적에 부합되게 ‘교훈’을 중심으로 서술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전기 관찬사서들 중 독특한 경향을 보이는 사서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였다.
세조 4년, 왕명을 하달하여 편찬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하였지만 세조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바라던 사서의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그 뒤 상당한 기간 중단이 되었다가, 성종 5년에 신숙주가 건의하여 다시 찬술되기 시작했고 성종 7년 12월에 삼국의 역사를 정리한 《삼국사절요》를 완성해 바쳐 올렸다. 단군조선부터 삼한까지를 간략히 서술한 외기(外紀)와 삼국의 역사 14권을 합해 총 15권으로 구성된 이 사서는 본래 세조가 《동국통감(東國通鑑)》이라는 이름으로 상고에서부터 고려에 이르는 역사를 정리하고자 한 목적으로 시작하였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삼국사절요》라는 이름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이후 성종 15년에 《동국통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사서를 수찬하였고, 성종 16년에 사론(史論)을 더하여 신편(新編) 《동국통감(東國通鑑)》이 완성이 되면서 《삼국사절요》는 단순히 《동국통감》을 저술하는 데 필요한 사료집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삼국사절요》라는 사서는 세조가 왜 역사 서술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것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세조 사후 정치권력의 성격이 바뀌면서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 또 《삼국사절요》의 완성이 후일 최종적으로 완성된 신편 《동국통감》과 어떠한 차이점과 유사점이 있는지를 연구하여 조선전기의 역사인식이 어떻게 이어졌고, 변모했는가를 알 수 있는 좋은 사적(史籍)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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