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학의 이해] 이기영의 「개벽」과 『땅』에 나타난 북한의 사회현실
- 최초 등록일
- 2003.05.19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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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문학의 이해] 이기영의 「개벽」과 『땅』에 나타난 북한의 사회현실
목차
I. 서론
II. 「개벽」과 『땅』에 나타나는 북한의 사회현실
1. 토지개혁
1)토지개혁과 이기영
2)토지개혁법령발표에 대한 미화
3)『땅』과 토지개혁
2. 농촌위원회와 민주선거
3. 민주노선과 반동노선의 대립
III.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기영(李箕永). 1896년 5월 6일 충청남도 아산 출생. 호는 민촌(民村).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농민 소설 작가. 대표작에 중편<서화(鼠火)>, 장편<고향> 등이 있음. 해방직후 월북함. 우리가 1980년대 이전에 발간된 어느 문학 사전이나 인명 사전을 우연히 넘기다 확인할 수 있는 소설가 이기영의 전부는 아마도 위와 같은 것일 것이다. 이렇게 이기영의 생애나 작품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무척이나 파편적이고 낯설게 되어 버렸던 이유는 그의 월북이 결정적인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이 단행되고 나서 이기영은 다소나마 대중들에게 가깝게 다가올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소설가로서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이기영의 생애를 도도한 역사의 흐름 가운데에 놓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기영이 출생한 1896년은 지난해에 발생한 명성 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에 이어, 왕실의 무능, 무력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 아관파천이 계속적으로 감행된 해였다. 일국의 왕이 궁궐을 떠나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 아닌 피신을 가야 했던 치욕스런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을 때에 이기영은 역시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아관파천 이후 더욱 빨라진 국운의 쇠락과 궤를 같이하여 이기영의 집안도 조부 대에는 하층 양반으로 소지주의 행세 정도는 하던 것이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몰락하여 소작농의 처지로 떨어져 그야말로 극도의 빈곤과 가난으로 그의 유년기는 점철되고 만다. 이러한 가난과 더불어 그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혈육의 죽음이었다. 11살의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에 이어, 계속된 조모와 아버지의 죽음은 그를 '죽음에 직결된 가난'에 떨어뜨리고 만다. 그리하여 이기영은 서당에서의 한학 수학, 사립 천안 영진학교 입학(1907년), 결혼(1909년), 영진학교 졸업(1910년), 남부 지방 일대 방랑 (1915년경), 논산 영화여자고등학교 교원 생활(1917∼1918년경), 호서은행 천안 지점 근무 (1918∼1921년경), 일본 동경정칙영어학교 수학(1922∼1923년 가을) 등으로 이어지는 젊은 날의 삶을 혹심한 가난에 모대기면서, 혹은 그 가난과 싸우면서 보내게 되는 것이다.
참고 자료
각주도 사용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