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선지의 업적 탈라스전투....

등록일 2003.05.18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1. 고구려 유민과 고선지
(1) 고구려 유민의 당으로의 이주 배경과 과정
(2) 고선지의 성장과 관직에서의 활동 (西征 이전)

2. 고선지의 서정(西征)
(1) 시대적 배경
(2) 1·2차 서정 (西征)과 탈라스 전투
(3) 서정(西征)의 역사적 의의

3. 탈라스 전투와 제지술(製紙術)의 전파(傳播)

4. 서정의 의의

본문내용

1. 고구려 유민과 고선지

(1) 고구려 유민의 당으로의 이주 배경과 과정
당은 A.D.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다음 해(高宗總章 2년) 4월 고구려 유민에 대한 추호이주정책(抽戶移住政策)을 결정하고 많은 고구려의 유민들을 내지제주(內地諸州)로 강제 이치(理致)하였다.
이는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의 유민들은 항당복국투쟁(抗唐復國鬪爭)을 지속적으로 실시했고, 당은 이를 저지 하기 위한 수단으로 추호(抽戶)정책을 추진(推進)한 것이다. 또 그 추이(抽移)의 대상이 대개가 중산 이상의 계층과 건장한 자로 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음은 이런 유형의 호민과 장정들을 그대로 남겨둔다면 항당군(抗唐軍)의 훌륭한 유인대상과 가담자가 되기 쉽다는 타산에서 당은 이러한 추호책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인들의 항당투쟁이 안동도호부의 치소인 평양성과 그 부근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 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추호대상자는 평양성과 그 부근의 주민 중에서 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사료된다. 또 당의 내지 각처에 이주된 고구려인들 중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당의 추호정책에 의하여 강제이치된 유민 외에 누차의 여·당전쟁에서 당군에 포로가 되어 이송된 사람들도 상당수가 있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고구려인들의 당에로의 이송경위는 각각 다르며 따라서 강제이치 후의 처우도 달랐다. 전쟁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대개 노예의 신분에 얽매여 관부의 사역이나 농노, 혹은 공한지의 개척자로 고역에 시달렸다. 그에 비해 고구려 멸망 후 강제이치된 유민들은 그 대부분이 호민이나 장정들로서 전자들보다는 처지가 나은 편이었으나 역시 망국노(亡國奴)로서의 운명은 면치 못한 채 당이 필요로 하는 적소에 배치되었고, 특히 당은 고구려인의 호무정신(好武精神)을 이용하여 청장년들을 군사에 많이 복무케 하였다.

참고 자료

삼국사기》
《구당서》
《신당서》

무함마드 깐수, 「고선지의 서정」,『史學論叢』, 일월서각.
W.프랑케 저, 김원모 역,『동서문화교류사』,단국대학교 출판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조배설 편저,『세계사 대사전』, 민중서림.
현규환, 『한국유이민사 上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