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 신극과 신파극의 수용

등록일 2003.05.16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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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신파극은 1910년대 초부터 1940년대 말까지 신극사의 주류를 이루었던 연극 양식의 하나이다. 신파극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수용된 용어이며, 신파극이라는 극양식 또한 일본 연극계에서 서양극의 기법을 수용하여 정립시킨 연극이다. 우리 연극계에서는 1910년 이후 신파극이 널리 보급되면서 일본에서 사용하던 이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판소리를 비롯한 우리 고유의 민속극을 구파 혹은 구극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한국 신극사의 제1기(1902~1910)는, 1902년 12월초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극장격인 궁내부 소관의 협률사(協律社)가 설치되고, 그 무대에서 <수춘대유희(小春臺遊戱)>라는 연희가 상연된 것에서 비롯된다. 판소리 연구가인 박황(朴晃)이나 한말의 명창인 송만갑(宋萬甲) · 이동백(李東伯) 등에 의하면, 협률사라는 이름은 1860년을 전후하여 판소리의 명창들이 중국 청(淸)나라의 협률창희(協律唱戱)에서 따온 것으로 주장한다. 이 단체에서 상연한 내용은 주로 판소리 · 줄타기 · 가무음곡 · 재담 · 농악 등의 연예물로서 창극은 상연되지 않았다.
협률사는 광무 6년(1902)에 고종 황제 등극 40년 칭경예식(稱慶禮式)을 거행하기 위해 궁내부 관할 아래 설치된 기관으로 희대(戱臺)를 마련하고, 기생(妓生)과 재인(才人)들의 연희를 연습시켜 오던 중 칭경예식이 국내외의 사정으로 연기되고 또 나중에는 명색만 갖춘 예식으로 흐지부지 끝나고 말자, 협률사는 일반의 오락기관으로서 최초의 영업적 극장이 되었고, 한편으로 기생과 배우들의 관리기관 노릇도 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김윤식 외, 한국현대문학사, 현대문학, 2002
조동일, 한국문학통사4, (주)지식산업사, 1994
임형택, 한국근대문학사론, 한길사, 1984
황패강, 한국문학연구입문, 지식산업사, 1982
http://100.empas.com/entry.html/?i=189571&Ad=map
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6-1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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