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그룹의 항공운수사업 진출 사례

등록일 2003.05.16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금호 그룹의 다각화 과정과 성과?
2. 금호 그룹의 항공 운수 사업 진출의 성공 여부?
3. '아시아나'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은?

본문내용

1. 금호 그룹의 다각화 과정과 성과?

1946년 금호그룹의 창업자인 박인천 회장은 '광주택시'를 설립, 2년 후인 1948년 현재 금호고속의 전신인 '광주여객'으로 확장을 하면서 실질적인 기업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광주 여객'은 주변의 중소기업을 흡수, 합병하면서 성장을 계속하다가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이 되면서 상호를 '광주고속'으로 변경을 하여 전문적인 운송업의 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금호 그룹은 '광주 고속'을 중심으로 수직적 후방통합을 시도하여 타이어를 자체 조달하기 위한 '삼양타이어 공업'을 1960년에 설립하였으며, 타이어의 원/부자제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기 위한 '한국합성고무'를 1970년에 설립하였다. 또한 1972년에는 생산된 타이어를 수출하기 위한 '금호 실업'을 설립하였으며, 1973년에는 미국의 모빌사와 합작으로 윤활유 생산업체인 '모빌 코리아'를 설립하였으며, 1974년에는 원활한 자금 운영을 위해서 '광주투자금융'을 설립하였다.

이처럼 금호 그룹의 초창기 다각화는 금호 그룹의 핵심 역량인 '운송사업'과 '서비스'와 관련이 있는 '다각화'를 실시함으로써 그룹의 성장과 수익을 증대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에 들어 정부의 '중화학 공업 추진 정책'에 부합하여 그룹의 핵심 역량과 전혀 무관한 사업으로 확장을 함으로써 기업의 큰 손실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가, 1976년에 인수한 '극동철강(금호산업)', 마포산업(금호전기), 명천기업(금호섬유), 제일토건(금호건설)등을 꼽을 수 있다. 위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금호그룹은 그들의 역량이나 경영자원과는 전혀 무관한 '비관련 다각화'에 의한 외형만을 성장시킴으로써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이에 금호 그룹은 그들의 잘못된 '다각화' 정책을 수정하기 위하여 기업의 핵심역량 및 경영 자원과 무관한 '비관련 부문의 기업'을 대폭적으로 정리하는 '탈 다각화'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 같은 금호 그룹의 몇 년간에 걸친 뼈저린 구조 조정 끝에 '운송사업' 전문 기업으로써의 입지를 강화하게 되었다. 이 결과 1987년 금호그룹은 무역협회와 공동으로 '한국 도심공항 터미널'을 설립함으로써 그들의 핵심 역량인 '육상 운송의 Know-How'를 발휘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신규 사업으로의 다각화는 훗날 '항공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결국 1988년 정부의 '복수 민항 체제' 정책과 맞물려 금호 그룹은 제 2 민항 사업 면허를 취득함으로써 '육상과 지상의 전문적인 운송 사업' 전문 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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