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위의 대동서
- 최초 등록일
- 2013.12.15
- 최종 저작일
- 2013.12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1. 강유위의 생애
2. 대동서의 구성과 내용
3. 대동서의 주요사상
4. 대동서의 역사적 평가와 의의
본문내용
1. 강유위의 생애
강유위는 1858년 광동(廣東)성 남해(南海)현에서 태어났다. 당시 중국은 아편전쟁에 패배하여 서구 열강의 침략에 무릎 꿇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는 등 전근대적인 봉건체제가 내부적으로 무너져 간 역사적 격동기였다. 강유위의 집안은 대대로 정주학을 받들어 온 집안이었다. 그는 7세 때 이미 문장을 지을 정도로 뛰어난 학문적 소양을 나타냈다. 일찍이 10세 때 부친을 여의고 그 뒤 할아버지 밑에서 정주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시험만을 위한 형식적인 공부를 몹시 싫어했다. 19세 되던 해에 지방의 과거시험인 향시를 마지못해 보았는데 본래 뜻을 두지 않은 시험이었던지 낙방했다.
낙방한 그 해에 강유위는 할아버지의 절실한 친구이자 아버지의 스승인 광동 지방의 대유학자 주차기의 문하에 들어갔다. 주차기는 정주학은 물론 경세지학에도 관심을 가진 인물로서 청조의 고증학 풍조를 비판하고 드디어는 관직을 버리고 30여 년간 서당을 열어 자제교육에 힘써 온 사람이다. 주차기의 이런 사상은 뒷날 강유위에게 정주학은 물론 경세치용학 등에 대해서도 매우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1877년 강유위 나이 20세 때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정서 불안정을 보이는 가운데 과거에 섭취한 모든 지식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회의하면서 갑작스런 사상 변화의 조짐을 띠기 시작한다. 아직 독자적인 생각을 하기에 충분한 나이는 아니었지만 이때부터 자기만의 독창적인 생각과 사고를 하려는 내적 움직임이 움트기 시작했다. 이즈음 주차기와 결별하고 1879년 서초산(西樵山)에 들어가 유학 이외의 학문에도 관심을 기울인 것 같다. 실제로 강유위 자신이 쓴 연보에도 서초산에 들어가 있으면서 전적으로 도교나 불교 관계 책을 공부했다고 쓰여 있다. 정말 당시는 강유위뿐만 아니라 사대부 지식인 중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참고 자료
강유위, 이성애 옮김,《대동서》, 민음사, 1991.
장유교, 고재욱 옮김,《중국근대철학사》, 서광사, 1989.
김성원 편저,《사서오경》, 명문당, 1987.
성낙수, 박정도 엮음,《동서고전7》, 신원문화사, 2006.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철학의 명저20》, 새길,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