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유적지 답사 보고서

등록일 2003.05.15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 건물은 조선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 축성과 함께 축조된 동, 서, 남, 북의 4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대로 산성내 최고봉인 일장성(해발495m)에 위치하고 있어 성내와 인근의 양주, 양평, 용인, 고양 및 서울, 인천까지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인조 14년(1636)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친히 군사들을 지휘, 격려하며 청대종의 10만 대군과
대항하여 45일간을 항전하던 곳으로 영조 27년(1751)에는 유수 이기진이 왕명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건립하고 외부 편액은 수어장대, 내부 편액은 무망루라 이름하였다.
무망루라 함은 병자호란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인조의 아들인 효종이 볼모로 심양에 잡혀갔
다가 8년만에 귀국하여 항상 청국에 대한 복수심으로 북벌을 꾀하다 승하한 원한을 후세에
전하고 그 비통함을 잊지 맞자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후 영조, 정조가 효종의 능소인
여주 영릉에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 장대에 들러 하룻밤을 지내면서 병자호란 때의
치욕사를 되새겼다고 전한다.
현 건물은 고종 건양 원년(1896)유수 박기수가 재건하였는데 2익공계 양식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하층 평면은 정면은 3칸과 측면 2칸을 구획하여 고주를 세우고 주위4면에 퇴칸
을 돌렸으며 중앙에는 단을 만들었다. 상층은 하층에 세운 고주가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변주가 되어 평면 비례상 급격히 줄어 든 감이 있다.
*원하는 자료를 검색 해 보세요.
  • [문화답사기] 남한산성을 다녀오다. 3 페이지
    망월사 경내에 들어가는 길에는 돌산 안에 세워진 격식의 사찰답게 주변이 온통 돌로 되어 있었다. 돌계단을 오르며 구도자 같은 마음으로 사뭇 진지하게 올라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높은 탑 주변을 줄을 지어 합장하고 ..
  • 남한산성을 다녀온뒤 작성한 답사 기행문입니다. 6 페이지
    ■ 답사를 마치고 이번 답사를 통해 조선시대 선비와 유교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 남한산성 답사가 단지 호국의 유적지가 아니라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자들이 가져야 할 가치관을 생각해 볼 수 있는..
  • [지리학개론] 남한산성 답사기 11 페이지
    1.들어가는글 남한산성은 서울근교에 자리하고 있어 등산코스로서, 또한 가까운 나들이 코스로서 자주 애용되고 있다. 아직까지 이곳은 서울근교에 자리잡은 산성중에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있는 산성중에 하나이다. 남한산성..
  • [답사기] 남한산성 답사기 8 페이지
    복학하고 새로운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보는 듯한 전공공부와 바뀐 학교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어떠한 여유도 없이 1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대학 내 거의 대부분이 학부제에 의해 변화된 대학의 모습 속에서 많은 낭만이 사라진 지금..
  • [답사기] 남한산성답사기 10 페이지
    평소 유적이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머릿속에 염려해두고 찾아다녀 본 적이 없는 나는 이번 답사를 준비하는 것이 매우 새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과제로 주어진 형식적인 답사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가까운 곳이고, 또..

이 자료와 함께 구매한 자료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