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사] 고려 토지제도

등록일 2003.05.11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토지소유론
2. 고려의 전시과체제
1)전시과체제 이전의 토지제도
(1)식읍(食邑)과 녹읍(祿邑)
(2)역분전(役分田)
2)전시과 제도(田柴科 制度)
(1)시정전시과
(2)개정전시과
(3)경전전시과
3. 공전·사전·민전
1)공전·사전·민전의 개념
2)공전
3)사전
4)민전

Ⅲ. 맺은 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토지(토지)는 모든 경제생활의 가장 기초가 된다. 물론 중세사회 역시 토지는 기본생산의 수단이었다. 신라말기 민심이 불안정하고 경제적·정치적 혼란을 수습하는 것은 분열되어 있던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의 큰 과제였을 것이다.
신라말기 신라주권으로부터 실지로 독립한 호족들이 성장함에 따라 신라의 중앙국고는 큰 타격을 받는다. 그들은 많은 토지들을 사유하고 있었으며 인민을 노비화하였기 때문에 중앙에 납부할 조세들을 탈점하였다. 이러한 현상으로 중앙국고가 타격을 받자 왕은 각 지방에 조세를 독촉하게 된다. 하지만 조세독촉의 대상은 횡령의 장본인들인 호족들에게 향해진 것이 아니라 국가나 이들 호족들에게 억압과 착취를 받고 있는 하층 농민에게 향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농민들은 궐기하게 되고 사방에서는 도적이 들끓게된다. 상당히 약화되어 있던 왕권은 광범한 농민들의 투쟁을 수습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 시기를 타서 적지 않은 지방 세력들이 신라왕조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관할구역을 실질상 영지로 전환시키게 된다. 결국 이러한 전쟁은 궁예의 태봉국, 견훤의 후백제 그리고 신라의 3개의 국가로 분립시키게 되는 것이다.
즉 이러한 상황에서의 민심수습이라는 것은 가장 큰 과제였다. 새로 성립된 고려왕조는 국내의 토지에 대하여 신라말기와는 다른 대책을 세워야 했을 것이다. 때문에 고려왕조는 전시과라는 새로운 토지제도가 형성이 되며 그 안에 공전, 사전, 민전등 다양한 토지형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참고 자료

『고려시대사 상』, 일지당, 박용운 1985
『고려토지제도사연구』, 고려대학교출판부, 강진철 1980
『고려시대사강의』, 늘함께, 한국중세사학회편 1997
『한국사와 토지 상』, 신서원, 박시형 1998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 역사비평사, 『역사비평』 편집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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