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사9-13 독서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3.12.09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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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루터
2. 쯔빙글리
3. 칼빈
4. 헨리 8세
5. 엘리자베드 1세
6. 재세래파
7. 신령주의자
8. 반-삼위일체파
9. 로마 카톨릭의 반동
10. 정통주의
11. 신조와 정통주의
12. 영국의 변화
13. 근대철학의 발전과 영향
14. 데카르트
15. 칸트
16. 19세기의 확장과 사회 개혁
17. 19세기 중반 - 로마 카톨릭의 재정립
18. 해외 선교
19. 교회사를 마무리하며..
본문내용
루터
1571년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회당 정문에 95개조에 달하는 면죄부 반박문을 못박을 때 가톨릭교회는 사라지고 새로운 교회가 탄생했다. 중세 말기에 이르러서 교회의 불만을 품은 사람은 들은 시비주의 공동체로 도피라거나 교회의 부정 부패를 풍자적으로 꼬집었으나 중세의 교황청은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어난 것이 바로 종교개혁이다. 특히, 루터는 성례적인 쇠사슬에 매여서 내가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죄 많은 모습을 고백하고 나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인정하는 구원관을 설파했다. 루터는 성경 안에 있는 복음을 배 발견한 것이다. 종교개혁 시기에 유럽은 국가가 교회로부터 독립하기 시작하였으며 문예부흥운동으로 인본주의, 철학, 과학적 방법론, 신대륙의 발견으로 사회전반에 걸친 개혁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공격을 받은 카톨릭 교회 역시 자신들에 대한 반성과 개신교에 대한 폐쇄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교황권 옹호와 해외선교에 힘쓰는 교단이 탄생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종교개혁을 만족하지 못하고 철저한 개혁을 부르짖는 과격한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중 략>
마리아 무흠잉태설을 교리로 승격시킨 교회 피우스 9세는 1868년 6월 29일 바티칸 제1차 회의소집을 명령하였다. 회의는 신앙과 교리, 교회훈련과 교회법, 동방 교회, 그리고 교회와 사회의 상호관계 등 수많은 주제를 다루어야 할 회의에서 교화의 무오설을 다루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1870년 7월 18일 화의는 결정내렸다. 교황이 교황좌에서 직무상 결정한 모든 것이 무오함으로 이제는 교황이 곧바로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를 공식적으로 차지하였으며 하나님이 가시적으로 이 따에 임하시는 것 같았다. 로마 교회가 가장 최근세에 선포한 교리가 마리아 승천 교리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근세에 들어서 확정된 로마 교회의 3가지 교리는 어쩌면 가정 비이성적이며 비본리적인 내용이다. 바로 개신교와 이성의 도전을 받아서 카톨릭교회의 갑옷을 더욱 튼튼히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